장롱과 화초장, 문갑 등 칠공예에 주로 사용되는 옻나무 수액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이미지가 펼쳐질까.
중국에서 7년간 다양한 벽화기법을 공부한 정채희씨의 ‘칠(漆)로 그린 그림전’에 가면 그 의문이 금새 풀린다.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된 지층처럼 부피감과 은은한 색감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캔버스위에 칠액을 바르고 말리고 갈고 덫칠하기를 여러번 반복한 뒤, 그리기ㆍ뿌리기ㆍ파내기ㆍ씌우기ㆍ상감하기 등 여러기법들을 혼용한 칠화의 특성 때문이다. 이런 번거로운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중도 포기가 특히 많은 분야라는게 김정희 서울대 미술사 교수의 설명이다.
그래서 나무판과 천, 아크릴 등 다양한 캔버스위에 전통칠예기법을 사용하며 입체적인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 정씨의 이번 전시 작품들을 대하면 일찍이 그가 불교에 심취했다는 말을 굳이 듣지 않더라고 고행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3월 22일까지 관훈동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전시된다.(02)725-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