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덜너덜 일어난 은박지 장판의 바닥이 지율스님의 단식 일수를 대신 말해준다.
단식 29일째. 꽃샘추위로 때 아닌 살얼음이 얼었던 오늘, 지율스님의 단식 천막에도 찬바람이 돌았다. 청와대 정무수석의 총무원 방문에 기대를 걸고 있던 스님은 '공사중지와 대안노선검토'라는 두리뭉실한 답변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늘 듣던 대답이 아니냐? 건교부와 고속철 공단의 기본입장도 지금껏 그와 같았지만 모든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여기까지 왔는데 또 다시 두리뭉실한 답변뿐이라니...."
말을 잇지 못한 스님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대응해 나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단식을 처음 시작했을때보다 9kg이 줄어든 스님의 몸과 얼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대로변의 소음과 매연을 견디며 지켜온 30일의 결실치고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게 스님의 마음이다.
스님은 청년불자들을 중심으로 모이고 있는 '환경과 상식회복을 위한 산시산 수시수 2배수 예참수행'에 기대를 걸고 있다. 첫날 오후 8시 0명으로 시작했던 예참수행이 둘째날엔 60명이 참석했다. 기대대로라면 오늘은 120명이 동참하게 되고 그 다음날엔 240명이 지율스님의 뜻에 마음을 보태게 된다.
또한 스님은 부산의 사찰 곳곳에 보낼 호소장을 준비해두고 대규모 법회를 준비중이다. 결국엔 생명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전환만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라는 걸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기도 동참 대중이 1천명을 넘어서는 것을 기점으로 환경에 대한 인식전환과 천성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또 다른 대응 방안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왔다. 지금껏의 관행을 되풀이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발주취소, 토지 수용 중단, 일체의 공사 중지를 포함한 구체적이고 공식적인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29일째 목숨을 건 단식이 진행되고 천막 농성장에는 일기예보에 대비해 천막을 덮을 비닐이 준비되고 있었다. 비가 와도 오늘의 2배수 예참 수행은 강행된다. 2배수 예참 수행에 동참하는 불자들의 마음이 지율스님의 한끼 양식이기 때문이다.
29일째 물과 소금만으로 지탱하고 있는 지율스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기다리며 오늘도 묵묵히 부산시청앞을 지키며 봄을 시샘하는 찬바람을 견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