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 없었으면 아마 오늘의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여러 갈래로 나뉘어 발전해 오던 우리 조상의 역사와 문화를 하나로 모아 우리 민족의 토대를 다진 고려인, 거대한 외세에 맞서 국토와 주권을 지켜낸 고려인의 파란만장했던 삶. 그 전모를 두 권에 담은 <한국생활사박물관-고려편>이 완간됐다.
몽골군의 침입 앞에서도 고려인은 의연함을 잃지 않고 맞서 싸우며, 세계 최고의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완성했다. 몽골 제국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간섭의 손길을 100년 동안이나 뻗어 왔지만, 고려인은 나라의 주권과 문화적 자존심을 지키며 그들 자신의 길을 갔다. 민족의 자랑인 세계적 문화유산들을 창조하고 온갖 시련 속에서도 그것을 지켜내어 우리에게 전해준 자랑스런 고려인. 그들을 <고려생활관 2>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는 사계절출판사가 직접 기획하고, 역사학·고고학·민속학·인류학· 등 관련학계 전문가들과 수많은 미술진이 참여하여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우리 민족 생활사를 총체적으로 재현할 예정이다. 그 여덟 번째 권인 이 책은 ‘생활사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는 것처럼 그저 역사적 사실을 나열해 놓은 여느 역사책과는 다르다. 보통사람까지 망라한 고려인의 생활상을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입체적·시각적 구성을 통해 총체적으로 되살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생활관1>이 호수와 같은 포용력으로 여러 갈래의 생활 문화를 하나로 녹여낸 고려 다원 사회를 탐방했다면, 이 책 <고려생활관2>는 몽골의 침입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역사의 명맥을 지켜낸 위대한 나라 고려를 찾아간다.
불교를 이야기 하지 않고 고려를 이야기 할 수 없는데, 이 책에는 당시 고려 불교의 다양한 모습도 담겨 있다. 고려시대의 불교는 성리학자들에게 미운 털이 박히기도 했지만, 대중과 함께 했고,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평등한 사회에 이바지했던, 건강한 삶의 반려였다.
고려 시대에 불교가 없었다면 청춘 남녀가 어울리는 짝을 찾아 젊음을 불태우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들은 평소에는 폐쇄적인 틀 속에 갇혀 있다가, 연등회 같은 불교 제전이 벌어지면 한껏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이성과 만나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연등회에서 있었던 탑돌이나 팔관회에서 벌어진 춤과 노래와 오락의 잔치에서는 남녀간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다가, 나중에는 난잡한 의식으로까지 흘러 성리학자의 비판의 도마에 오를 지경에 이르렀다.
고려 시대에 인간의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생활 전체를 주관했던 불교는, 이처럼 거국적인 제전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사회의 폐쇄성에 큰 환기 구멍이 되어주었다. 나아가 팔관회 때 개경 거리에서 이루어진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상품 교역은 자급자족 체제에 매여 있던 사람들의 생활과 경제 활성화에 활력소 구실을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시장에서 벌어지는 풍속에서부터 전장에서 사용됐던 동아시아 무기, 성리학의 도입과 수용, 고려 불화의 세계, 세계의 인쇄술, 고려 말의 개혁 등 격동과 변화의 땅이었던 고려 시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고려생활관2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지음
사계절, 1만6천8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