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이며 민족시인으로 근대사에 큰 자취를 남긴 만해 한용운 스님이 15년 동안 기거했던 계동 한옥이 방치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계동 북촌한옥보존마을에 있는 35평 남짓한 ‘ㄷ’자형 한옥은 만해 한용운(1879∼1944) 스님이 1919년 3.1만세운동의 기미독립선언문 강령을 작성한 현장이며, 나라 잃은 슬픔과 독립의지를 담은 시 ‘님의 침묵’을 탈고했던 고택이다.
소설가 오인문(종로구 홍지동)씨가 1월 초 처음 발굴한 만해 스님의 옛집은 현재 집의 규모가 줄어들었고, 기왓장이 무너져 내리고, 서까래가 썩어 들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만해 스님의 옛집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종로구청 문화재계의 한 관계자는 “구에서 문화재 가치판단을 조사해 2월초 ‘한용운 생가를 매입하여 기념관으로 조성하는 등의 보존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서울시에 건의했다”며 “아직까지 시의 공식적인 답변은 없지만 ‘건물의 변형이 심해 문화재 지정이 힘들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1988년 이사 온 건물주 여규평씨는 “몇 차례 집을 보수했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원형보존이 쉽지 않다”며 “시나 구가 좋은 뜻으로 매입하여 학생들의 교육장으로 활용한다면 기꺼이 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자체와 정부당국이 근 현대 건축물의 경우 뚜렷한 역사 및 문화적 가치가 입증되지 않으면 ‘사유물’인 집을 문화재로 지정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연세대 연신원 건물과 서울 우이동의 육당 최남선 고택이 반대 여론 속에 기습 철거되고 있다.
문화시민단체들은 가옥 소유주들이 문화재 지정을 우려해 먼저 가옥을 철거해버리는 추세에 우리 역사 문화 공간의 멸실을 우려하고 있다. 홍지동의 빙허 현진건 고택이 수차례 서울시에 문화재 지정을 요청했으나 거부된 것은 단순한 예산문제 때문이라는 이유는 궁색한 변명이라는 지적이다.
이기선 조계종 성보문화재위원은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며 “당국은 법규나 예산상 어렵다는 핑계만 댈 것이 아니라 할 것이 아니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