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1년차인 주부 박모 씨(38)는 남편(41)에게 손찌검을 당하고 지난해 12월 한국여성불교연합회(회장 김묘주) 부설 행복한가정상담소를 찾았다. 술만 마시면 폭력을 일삼는 남편에게 4년째 구타를 당하던 박 씨는 남편에게 각서까지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참다못한 박 씨는 상담소를 찾아 위기를 모면한 뒤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 후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아들과 함께 모자보호쉼터에 입소할 계획이다.
최근 개그우먼 이경실 씨 사건으로 가정폭력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부부 간의 폭력은 제3자의 개입이 쉽지 않고 가정 파탄과 자녀의 불행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실태
행복한가정상담소가 발표한 ‘2002년 상담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상담소는 지난 한 해 312건의 상담을 했으며 이 중 55%에 달하는 173명이 가정폭력피해를 상담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여성부의 집계를 보면 지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전국 가정폭력상담소에 접수된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99년 4만1497건에서 2000년 7만5723건, 2001년 11만4612건으로 매년 50% 이상 큰 폭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실제 일어나는 가정폭력은 통계를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의 대부분이 폭행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고 가정이 깨지는데 대한 우려로 상담을 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폭력을 숨기는 것은 구타가 지속 반복되는 지름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상담사례가 고소나 고발 등 실제 사법처리로 이어진 것도 99년 1.9%, 2000년 1.8%, 2001년 2.6%에 불과하다. 아직도 가정폭력을 가정 내의 일로 파악하는 인식이 만연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문자 서울 여성의 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맞을 짓을 했을 것’이라는 식으로 가정폭력의 원인이 여성에게 있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한다”며 “어떤 이유로든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사회적 범죄”라고 강조했다.
△대처 방법
지난 1997년 제정된 가정폭력방지법은 가정폭력을 사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개입해서 해결해야 할 공적인 문제이자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가정폭력을 당했을 때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가까운 상담소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정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고 진단서를 발급받는 등 증거를 남겨야 한다. 상담소에서는 긴급상황에 경찰을 직접 연결해 주거나 대한 법률구조공단과 연계해 무료 법률 상담도 해준다.
김묘주 회장은 “가정폭력을 당했을 때는 무조건 참는다는 태도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선 남편과 함께 폭력을 쓰게 된 계기와 문제점을 이야기해보고, 폭력 재발을 위한 수칙이나 각서를 작성해 본다. 각서를 쓰고도 폭력이 재발한다면 전문상담소를 찾아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