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째 한국에서 참선하며 성철(性徹 : 1912~1993) 스님의 선사상을 연구하고 있는 한국예수회 소속의 서명원(51, Senecal Bernard) 신부. 84년 서강대학교의 요청으로 한국으로 온 후 무당패와 어울리던 그가 왜 해인사의 성철 스님을 만났는지,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인연, 인연이라.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왔다 갔다 한거라고나 할까요. 그리스도교의 언어로 하자면 '주님의 섭리하심'이라고 말할 수 있죠.”
2월 6일 경기 여주의 한 수도원에서 어렵게 서명원 신부를 만났다. 약속 시간을 잘못 알아 미리 도착했다가 3시간을 기다린 뒤에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를 번역하면서 깊이 몰입해, 약속 시간 전에 미리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 큰 키에 선한 모습을 한 그는 예의 바른 모습이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었다. 거듭 미안하다는 그에게 궁금한 생각들을 쏟아냈다.
"성철 스님을 알게 된 때는 언제입니까?"
"10 여년전 로버트 버스웰(Robert E. Buswell) 교수가 쓴 책
1984년 여름 서강대 한국예수회 초청으로 방한한 그는 한국에 잠시 머물다 85년 가을에 다시 왔다. 5년간 살다가 90년부터 95년까지 다시 프랑스에서 공부한 후 95년 12월말 귀국해 지금껏 머물고 있다. 캐나다 퀴벡주 몬트리올 태생인 그는 25세에 프랑스의 한 의대를 자퇴하고 79년 가톨릭에 사제로 입회(入會)했다. 가톨릭 수도회 신학대학에서 신학과정을 마치고 파리7대학 한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국불교 전공)하고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중이다. 지도교수는 중국불교 학자인 바오로 마그닌(Paul Magnin) 교수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듯이 무모하게 성철 스님의 위대한 사상에 대해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어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스스로 드러난다), 위편삼절(韋編三絶: 가죽으로 맨 책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지다)의 심정으로 성철 스님의 저서를 열독하고 있어요. 그리고 단순한 지식이 아닌 스님의 수행방식을 몸으로 체득하고 싶어요."
왜 성철 스님이 노년에 돈황본 <육조단경>을 번역하면서 각주와 지침을 달았는지? 산꼭대기에 오르려면 기슭부터 올라가야 하듯, 성철 사상의 전모를 알기 위해서는 폭넓게 그의 저서를 읽어야 했다. <육조단경> <백일법문> <한국불교의 법맥> <선문정로> 등 성철 스님의 주요 저서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책이 닳을 정도로 읽고 또 읽은 자욱이 역력하다. 아침 5시 좌선 시간에 앞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암송할 정도로 체득이 된 상태다.
그가 컴퓨터로 작업중인 논문을 보여주었다. 논문의 서문부터 빼곡한 한문과 산스크리트어, 불어, 영어, 한국어, 일어, 중국어가 일사불란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방인이 한국 불교를 모국인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에 순간, 전율이 느껴졌다. 그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고 텍스트에 대한 충분한 번역을 바탕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방인이 본 성철 스님은 어떤 분일까.
"성철 스님은 역시 가야산 호랑이였어요. 자신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어요. '무리를 뛰어넘는 바른 정법안장을 갖춘 분'(超群正眼)이라고나 할까요. 그리스도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위대한 사상가였어요."
그는 성철 스님의 사상을 머리로만 연구하지 않는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경당'(기도실)이라고 쓰여있는 옆방에서 참선을 한다. 스스로 죽비 한번 치고, 절을 한 다음, 종을 세 번 친후 1시간 참선한다. 하루 일과를 마친 밤에도 마찬가지다. 한번 앉은 힘으로 생활속에서도 화두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제는 참선과 공부가 융합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선교일치(禪敎一致)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오네요.”
논문을 쓰면서 꽉 막힌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럴 때 마다 놓아둠으로써 저절로 문제가 해결된다. 꽉 막힐 때면 고양이가 생선을 노리듯 화두에 집중한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문제의 답은 저절로 떠오른다. 이런 일이 하루에도 몇차례씩 있다.
서명원 신부가 한국의 참선단체인 선도회와 인연이 닿은 것은 96년 말. 처음에는 참선 수행모임이 있다는 말을 가볍게 들었는데, 이제는 귀의불, 귀의법, 귀의승가하는 문이 되었다. 선도회 박영재(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지도법사는 그보다 연하인데다 기존의 선사 개념과는 다른 분이었지만, 그(법명은 天達)를 깊은 불교의 세계로 이끈 스승이었다. 지난 12월 22~23일 도피안사 철야정진을 끝으로 입실지도(정기적인 점검)를 받지 못하는 대신 전자우편(e-mail)로 점검을 받고 있다.
성철 스님의 제자로서 그는 ‘확철대오’를 서원하고 있다. 나날이 깨어져 가는 자신을 보고, 지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오매일여의 경지가 될 때까지 정진한다. 성철 스님의 제자이자 그리스도의 제자인 그는 예수 역시 확철대오 했다고 의심의 여지없이 믿는다. 성철과 예수 사이에는 문화권의 차이에 따른 표출방식이 달랐을 뿐, 근원적인 깨달음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자신의 신앙을 심화시킬 수 있었을까.
"<육조단경>에서 설하기를, '본래 마음을 알지 못하면 법을 배워도 얻는 것이 없다(不識本心 學法無益)'라고 했습니다. 끝없는 수행을 통해 불자가 살아있는 부처가 되어야 하듯이, 그리스도인도 수행을 통해 살아있는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불현 듯, 서명원 신부가 지금 두문불출하고 있는 이 곳이 '스승 예수의 제자 수도회'의 수도원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남들이 너무나 자주 한다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리스도의 영성과 불성이 같다고 보세요?"
"주-객관이 사라진 무차별의 세계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차별계로 돌아와서는 분명히 다릅니다. 무차별계에서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이요 공즉시색(空卽是色)이지만, 차별계에서는 공은 공이요, 색은 색일 뿐이니까요. 성철 스님의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말씀처럼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결국 부처는 부처요, 예수는 예수인 것입니다."
‘화합하되 같지 아니하고, 같으면 화합하지 못한다(和而不同 同而不和)’는 말이 떠오른다고 하자, 바로 그거라고 맞장구친다. 모든 존재의 고유함을 살려주면서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주체성을 가진 화합이라고나 할까. 서명원 신부가 지금 이 땅에서 퇴옹당(退翁堂 : 성철 스님의 법호)에 빠진 이유다.
서명원 신부는 올해 안에 논문을 다 쓴 후 <선문정로> 등 성철 스님의 저서들을 불어로 번역할 계획이다. 모국어를 통해 성철 스님의 사상을 완전하게 표출하기는 어렵겠지만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조화로운 만남에 이바지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