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달라이 라마의 조국. 히말라야 눈 속에 파묻힌 신비의 나라. 그러나 중국의 지배를 받는 약소국.
일반이 알고 있는 티베트는 이런 정도다. 과연 이것이 티베트의 전부일까. 단연코 아니다. 화가이자 티베트 기행가인 김규현 씨는 <티베트 역사 산책>에서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가 바다였으며, 티베트인의 조상이 유인원의 후예라는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티베트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동안 많은 티베트이 불교사나 부분적인 역사를 다룬 티베트 관련서 들이 있었지만 고대 신화시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티베트의 역사를 고스란히 되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 씨는 강원도 홍천에서 티베트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면서, 10년 넘게 티베트에만 매달려 온 진정한 티베트 연구가이다. 라싸의 티베트 대학에서 수인목판화와 탕카를 연구했으며, 1993년부터 양자강 황하 갠지스강과 티베트 고원을 단신으로 종주했다. 전생에 티베트인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는, 신비의 땅 티베트의 매력을 상품화 시키려는 저급한 의도와는 애초에 거리가 먼 오로지 티베트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티베트의 독립을 기원하며 그 온전한 역사를 이 책에서 펼쳐 보인다.
외부세상과 고립된 척박한 땅에서 스스로를 ‘유인원의 후예’라 생각하는, 초과학적 신화를 갖고 있던 ‘뵈릭’민족이 티베트의 조상이다. 이들은 유인원에서 진화를 거듭하면서 스스로 꼬리를 떼어내고 인간이 되었다고 인식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진화론적 윤회론의 신봉자들이다. 중국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티베트는 그들 나름의 제국을 유지하며 살아 왔다. 한때는 영토가 남으로는 히말라야를 너머 네팔까지, 서북으로는 중앙아시아까지, 동북으로는 장안 근처까지 뻗어서 당시 세계 최대 제국 당나라를 위협할 정도의 국가로서 당당하게 군림했다. 네팔에서는 공주를 보내어 화친을 맺었으며, 당태종도 티베트인을 두려워하여 문성공주를 시집보냈다. 또 후에 잦은 반란으로 당의 세력이 약해지자, 티베트에 영토를 떼어주고 조공을 바친다는 굴욕적인 조건으로 구원을 요청했을 정도로 그 위세가 당당했다.
9세기에 들어와서 티베트는 전통 종교인 뵌뽀교와 외래 종교인 불교와의 오랜 갈등으로 분열되기 시작하여 4백여 년간 혼란기를 맞게 되다가, 15세기에 이르러 게룩파에 의해 ‘법왕(法王)제도’가 확립되면서 불교왕국으로 통일된다.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조캉, 라모체 사원과 함께 만다라 형식으로 배열되어 있는 뽀따라는 티베트의 법왕제를 상징한다. 티베트 불교의 특색은 활불(活佛)제도다. 몸만 바꿔서 돌아온 법왕의 영혼을 찾아내 린포체로 선발하는데, 이 살아있는 부처의 믿음에 의존하여 생활한다. 법왕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로서 14대에 이른 지금까지도 티베트의 상징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의 망명으로 뽀따라 궁전 역시 주인을 잃고 만다.
이러한 티베트 역사를 산책하며 저자는 때때로 해박한 지식으로 유인원의 후예인 그들의 창세기 신화와 우리의 단군신화 주몽신화 등 탄생신화의 공통점을 찾아내기도 하고, 우리의 색동무늬가 몽골로 전해진 티베트 ‘무탁(하늘과 땅을잇는 역할을 하는 무지개 같은 오색 실)’의 변형이라는 등 서로 다른 문화권이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사실도 밝혀낸다. 특히 저자는 이 책에서 혜초 스님보다 1백년 전에 티베트를 횡단했던 네 명의 신라 승려에 대한 기록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등 볼거리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딱딱한 역사 기술 중심의 역사서가 아니라, 티베트 여행가인 저자를 따라 마치 티베트 곳곳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으로 전개되는 이 책은 국내외적으로 ‘티베트학’의 한 획을 긋는 귀중한 저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티베트 역사산책
글·사진·그림 다정 김규현
정신세계사, 1만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