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안강역 최해암 역장-
차디찬 겨울 들판의 적막을 깨며 낡은 열차 한대가 시골역으로 들어선다. 감색 재킷에 회색 바지의 제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역장이 플랫폼에서 깃발을 흔들며 기차를 맞이한다. 힘겹게 먼 길을 달려온 듯 철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손님들을 쏟아낸다. 두 손에 잔뜩 보따리를 들고 있는 할머니와 코흘리개 손주,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경주 시내에 다녀오는 동네 청년들…. 손님들은 자신들을 맞아주는 역장을 발견하자 반가운 인사부터 띄운다.
“역장님, 수고가 많지예.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더”
경북 경주시 안강읍 안강역 최해암 역장(51)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반갑고도 고마운 존재다. 단순히 시골역장만이 아니라 이웃처럼, 아버지처럼, 때로는 아들처럼 그들과 지내왔다. 1973년 철도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이래 부산역을 거쳐 모량역, 건천역, 포항 효자역, 울산 호계역장과 지금의 자리로 오기까지 그는 한결같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왔다.
역장을 포함해 안강역의 직원은 고작 8명. 2개조로 나뉘어 24시간 맞교대로 일해야 한다. 아침 9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24시간을 꼬박 일하고 나면 온몸은 녹초가 되게 마련이다. 다음날 출근하기 위해서는 휴식을 취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퇴근하는 최역장의 발길은 집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한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불교봉사단체 ‘카루나의 모임’에서 돌보고 있는 경주 일대 소년소녀가장이나 결식아동, 독거노인들을 찾는 것이다.
빨래·청소·집수리 등 이런저런 집안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 남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해 경계심을 갖던 아이들. 그러나 한번 더 안아주고 한번 더 어루만져주는 그의 마음 씀씀이에 이제 완전히 마음을 열고 그를 아버지처럼 대한다.
“아이들을 돕는다는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한 가족이 됐다고 생각하고 똑같이 안아주고 도닥여주고, 어려움을 함께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이미 상처를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마음이 서로 통할 수 있습니다”
집으로 와서도 제대로 쉬지를 못한다. 집으로 걸려오는 상담전화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경주 YMCA 10대의 전화’ 상담실의 상담원이기도 하다. 학업·가족·진로·성(性) 문제 등 청소년들의 고민거리들을 자상하게 상담해주고 있다. 필요할 때면 직접 대면상담을 갖기도 한다.
“상담을 할 때는 일단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도록 조용히 들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해결책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일단 터놓고 이야기할 대상이 필요하지요”
자신을 위한 시간은 고스란히 포기한 채 살아오기를 벌써 30년째. 비번인 날이 오히려 더 바쁠 때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몸은 힘들지만 이렇게 사는 게 얼마나 보람있고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즐거워한다.
최역장이 어려운 이웃, 특히 청소년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그의 성장과정과 관계 깊다. 6·25때 유복자로 태어나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인지라 어렵게 자라는 청소년들의 처지를 누구 못지않게 잘 이해한다.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입고 입던 옷까지 벗어주시던 어머니(2000년 작고)의 모습에서도 큰 가르침을 받았다.
최역장은 역을 오가는 청소년들을 예사로 보아넘기는 법이 없다. 담배를 피우는 중·고등학생들을 발견하면 따끔하게 혼을 내고, 행동거지가 바르지 못한 녀석들은 엄하게 꾸짖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출 청소년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가출한 아이들을 발견하면 역 사무실로 데려와 라면도 끓여먹이고 며칠씩 돌보면서 집으로 돌아갈 것을 설득한다. 부모님을 찾아오게 해 화해를 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그가 집으로 돌려보낸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만삭에 가까운 한 여학생을 열흘 가량 돌보다 아는 병원에서 해산을 시키고 집으로 돌려보낸 적도 있다. 그렇게 그와 인연을 맺었던 아이들, 청소년들은 지금도 그를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내오고 명절때나 근처를 지날 때 그를 찾아와 인사를 하곤 한다.
역 직원들도 최역장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받아 박봉을 쪼개 모은 돈으로 소년소녀가장들의 살림을 돕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역 이곳저곳에 놓아둔 돼지저금통에서 나오는 2만∼3만원의 돈도 어려운 이웃돕기에 사용된다. 인근 지역 자원봉사자들이나 독지가들 역시 최역장의 선행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든든한 후원자들이다.
최역장의 꿈은 소년소녀가장들이 입주해 살 수 있는 거주공간 ‘카루나의 집’을 짓는 것이다. 공사를 하기에는 경비가 아직 턱없이 모자라 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많다는 생각 때문이다.
-[취재수첩]역사내 노인들 사랑방 운영…지역 문화공간 역할 톡톡히-
안강역은 동해남부선 경주와 포항 사이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하루 이용객 수는 650명 정도로 아담한 규모. 일제시대인 1918년 세워지고, 66년에 현재의 역사가 완공됐다.
여느 시골역과 다를 바 없던 이곳이 ‘특별한’ 모습으로 변신한 것은 99년 최역장이 부임하고서부터. 그는 이곳을 무표정한 승객들이 잠시 스쳐지나가는 삭막한 공간이 아닌 주민들을 위한 따듯한 쉼터로 바꿔놓았다. 역사 내에 사랑방을 만들어 승객들은 물론 갈 곳 없는 마을 노인들이나 아이들이 쉬면서 책이나 신문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책은 원하면 이름을 기록하지 않고도 마음대로 빌려갈 수 있다. 최역장은 DJ도 겸하고 있다. 역내 음악방송인 ‘기차와 소나무’는 국내 최초로 시작된 철도 인터넷 방송. 가요·클래식·팝·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승객들의 귀를 즐겁게 한다.
역 구내에는 초파일이면 연등이 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트리가 꾸며진다. 어린이날엔 풍선이 달리고 어버이날에는 찾아온 어르신들에게 꽃을 달아드리는 이벤트도 펼쳐진다. 플랫폼 근처에 만들어놓은 오리와 토끼, 닭 등을 사육하는 작은 동물농장은 어린이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역사 안은 일부러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며 담소를 나누기 위해 이곳을 찾는 마을사람들로 항상 북적댄다.
쉴 곳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노인들의 ‘뇌물’도 줄을 잇는다. 참기름·과일·달걀…. 시골노인들의 작지만 소중한 정성이 담긴 선물을 최역장은 고맙게 받는다. 물론 그 선물들은 그가 돌보는 어려운 청소년들이나 노인들에게 전달된다.
안강역 1층에서는 요즘 공사가 한창이다.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와 주민들이 모임을 가질 수 있는 사랑방을 짓는 공사. 최역장은 “갤러리가 완공되면 안강역은 지역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역은 여행이 이뤄지는 곳만이 아니라 지역사람들의 생활의 장이 돼야 합니다. 안강역을 주민들이 언제든지 들러 쉬기도 하고 문화의 향내도 맡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경향신문 안강/이호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