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일이 확정된 지 보름이 지나면서 후보로 나선 종하, 법장 두 스님은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종책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두 후보 측은 2월 7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지명스님과 함께 가진 간담회에서 후보등록이 시작되는 14일 이후에 종책을 발표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후보 추대식과 불교계 언론과의 인터뷰 등 사실상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선거일 10일 전에야 종책을 발표하는 것은 사실상 종책선거가 되기 어렵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총무원장 선거와 관련된 법규는 종헌과 총무원장 선거법, 선거관리위원회 시행규칙에 명시된 10여 개 조항이 전부고, 이들 조항조차도 금품수수나 인신공격 등을 금지하는 원칙적인 내용에 불과해 종책선거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종책 제시를 지연시키는 또 다른 이유는 종도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선거시스템 때문이다. 후보들은 교구에서 선출된 240명과 중앙종회의원 81명 등 321명의 선거인단 ‘표심’만 잡으면 된다. 따라서 종책에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문중이나 계파의 이해관계에 몰두하게 되고, 바로 이런 법규정의 느슨함이 종책선거 요구를 수면 아래로 잠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비한 선거법 때문에 당초 기대와는 달리 종책선거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많아지자,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 선거법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짚어본다.
●선거기간
총무원장 선거법 제11조에는 선거 기간을 10일로 못 박고 있다.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기간(14~23일) 외에 후보자들이 신상명세나 종책공약의 개요를 공식적으로 광고 또는 홍보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렇게 본다면 후보자들이 자신의 종책을 제시하고 검증받을 수 있는 기간은 10일에 불과하다.
이 같은 선거법이 마련된 것은 94년 개혁종단 때로, 장기간의 선거운동으로 야기되는 과열혼탁 양상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10일로 종책을 제대로 알리고 검증받기에는 시간이 절대 부족해 사실상 종책을 통한 위위 확보는 차선책으로 밀려나게 된다.
한 종회의원은 “차라리 선거기간을 20일 정도로 늘려 종책선거를 유도하고, 대신 종법개정을 통해 타락선거의 가능성을 엄격히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선거인단 선출
선거인단 선출방식도 ‘공명 ? 종책’ 선거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선거인단의 자격기준이 종법에 명시돼 있지 않아 비구자격만 갖추면 누구나 가능하고, 따라서 법랍 30년 이상의 총무원장 후보자들은 표를 얻기 위해 손상좌에게 허리를 굽히는 일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위계를 중시하는 승가풍토를 훼손시킬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 종회의원 선출 자격에 준하는 기준을 적용할 때 이같은 문제는 해소될 수 있다.
선거인단 선출 방법도 종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 주지의 직권이나 문중의 이해관계에 좌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특정 후보에 표가 몰릴 수 있고, 따라서 종책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24개 교구가 똑같이 10인의 선거인단을 갖는 것도 공정한 선거제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재적승 2천명 이상의 교구나 1백여명에 불과한 교구가 똑같은 선거인단을 갖는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선거 관련 법규정 미비
후보등록 후 단 1회에 한해 종책을 교계신문에 게재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는 종법 조항이 종책선거를 사실상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사전 선거운동이나 금권, 타락 선거를 막을 수 있는 구체적 법규정 마련도 필수적이다. 종하, 법장 두 후보 측은 명확한 규정이 없다보니 선거법을 벗어나지 않는 선이 어느 정도인지 조차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종헌종법이 94년 개혁회의 때 마련돼 현재의 시대상황을 대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현실을 감안한 선거법이 마련돼야만 종책선거, 공명선거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