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만 하더라도 한국 가정은 열린 공간이었으며, 여성의 힘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조선 중기인 이 시기는 주자학적 가부장제 의식이 널리 보급되기 전으로 17세기 중반 이후인 조선 후기에 비해서는 매우 개방적인 사회였다. 비록 제한적이나마 신분 상승이 가능하였고, 유교 이외에 불교와 도교 사상이 공존했으며, 또 고대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여권 존중의 전통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 시기 사람들은 가족관계에서 아들과 딸을 따지지 않았고, 친족 관계에서 본손과 외손을 구별하지 않았다. 당시 가족은 오늘날 웬만한 기업체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사회였으며 따라서 집안일도 엄연한 사회활동으로 간주되었다. 혼인 풍속과 결혼생활도 남자가 여자집으로 가서 혼례를 올리고 그대로 눌러사는 장가와 처가살이 혹은 남귀여가(男歸女家)와 친정살이가 널리 유행했으며, 아들과 딸의 차별 없이 재산을 균등하게 나눠주는 균분상속이 이뤄졌고, 조상의 제사도 자녀들이 서로 돌려가며 지내는 윤회봉사(輪回奉祀)가 관행이었다. 한마디로 남녀의 권리와 의무가 서로 동등하였다.
<홀로 벼슬하여 그대를 생각하노라>는 이러한 16세기 조선시대의 양반가정의 일상생활을 <미암일기>를 중심으로 사실대로 재현한 것이다. 고려대학교 강사 및 한국문화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인 정창권 박사가 썼다.
<미암일기>는 1567년에서 1577년까지 약 11년에 걸쳐 거의 매일같이 한문으로 기록한 미암 유희춘의 개인일기다. 미암은 사헌부 대사헌, 홍문한 부제학 등을 거치며 16세기 후반의 걸출한 인물들인 이이, 허봉, 허준, 정철, 어숙권 등과 교유했던 대표적인 호남사림 가운데 한사람이다. 그의 부인 송덕봉은 다양한 소양을 갖춘 양반여성이자 대단한 시적 감각을 지닌 문인으로, 최근 들어 신사임당의 뒤를 잇는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책은 <미암일기>를 관직생활, 살림살이, 나들이, 재산증식, 부부갈등, 노후생활의 6개 주제로 나누어 미암을 비롯한 16세기 사람들의 생활상을 설명하고, <미암일기>에 기록된 실제 사건과 상황들을 저자가 약간의 상상을 가미하여 이야기로 구성한 것이다. 조정의 정치사에서부터 집안의 대소사 및 개인의 신변잡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광범위한 사실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왕실 소식, 정국 동향, 사신 접대 등의 역사적 사실과 미암이 홍문관에서 근무할 당시에 관한 기록, 그리고 이사, 집수리, 건축, 혼례풍습, 집안 잔치 등 집안의 대소사도 꼼꼼히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부인 송덕봉과 자식들의 생활모습, 그들 주변에서 온갖 시중을 드는 노비, 첩, 서녀, 의녀, 기녀의 생활도 빠짐없이 기록했다. 특히 미암은 살림에도 관심이 많아 집안에 나고 드는 물건들을 매일같이 일기에 기록했는데, 이를 통해서 16세기 양반가의 살림규모를 비교적 소상히 파악할 수 있다.
옛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미암과 미암 주변의 인물들이 주색을 가까이 하거나 첩을 둘 때 벌어지는 부인들의 시기와 질투 남편에 대한 홀대, 미암의 사위와 손자 등이 마음을 다잡지 못해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산사(山寺)로 들어가는 일 등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계속되는 사람 사는 사이의 일이라는 점을 발견하는 것도 흥미롭다.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정창권 풀어씀
사계절, 1만 2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