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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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비조사 백제 와공이 만들었다
일본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는 당시 야마토(大和) 정권의 실권자였던 소가(蘇我)씨의 요청으로 588년(백제 위덕왕 35)에 백제에서 조사공(造寺工, 건축기술자), 와박사(瓦博士, 기와 굽는 장인), 화사(畵師) 등의 장인이 건너갔고, 이들은 이듬해 일본 최초의 절인 아스카데라(飛鳥寺)를 창건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백제에서 건너간 장인들은 도대체 어떤 기술을 가지고 갔을까?

조원창(조계종 문화유산발굴조사단 책임연구원)씨의 최근 박사학위(상명대 사학과 한국미술사전공) 논문 ‘백제 건축기술의 대일전파(기단축조와 제와술을 중심으로)’는 단편적인 존재만 알려졌던 조사공과 와박사의 실체를 고고 미술사적인 접근으로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스카데라에서 주로 출토되는 원형돌기식과 삼각돌기식 와당은 588년 백제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와박사들에 의해 제작됐으며 이들은 백제 도읍인 부여지역에서 활동하던 장인들이었다.

아스카데라 출토 와당은 원형돌기식과 삼각돌기식 와당의 구분 없이 연판에 비해 가운데 자방을 현저히 작게 표현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 이는 6세기 후반 부여지역에서 유행하던 와당 문양으로 같은 시기 공주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아스카데라의 와당은 이후 창건된 일본의 여러 사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아스카데라의 와당이 백제의 와박사에 의해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판의 수나 자방의 연자 수 등 세부 문양은 판이하게 다르다. 조 씨는 “이는 결과적으로 백제 와박사들이 와범(瓦范)을 가져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당시 백제의 와박사를 기존 제와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무리와 새로운 제와술을 도안하려는 무리로 양분했을 대 일본에 파견된 와박사들을 기존의 보수적 분위기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작품을 창안하기 위해 떠난 선구자들로 생각된다는 설명이다.

한편 조 씨는 이번 논문에서 기단을 이층으로 쌓는 이중기단 방식이 고구려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다는 것 때문에 아스카데라 금당 양식을 고구려로 봤지만 백제 양식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스카데라가 창건될 당시 고구려에서의 조사공 파견 기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지지 않는 반면 백제의 조사공 파견은 명확하게 나타나 있고, 아스카데라 발굴 당시에는 없었으나 최근 백제의 이중기단이 부여 능산리 절터 등 옛 사비지역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권형진 기자 | jinny@buddhapia.com
2003-02-03 오전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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