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땅의 한해는 분명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젊은 새 지도자를 맞아 정치적으로 큰 변혁을 예감하고 있으며 그로 하여 보다 참신한 시대가 전개되리란 기대감 또한 높다.
하지만 지난해 첨예한 대결로만 치달아 온 선거로 인해 국민들은 너무나 피곤했고, 선택 결과로 드러난 이 땅의 상처는 전에 없이 깊은 것으로 드러났다. ‘첫눈 같은 새 정치를 펴 보이겠다.’ 다짐하는 대통령 당선자의 첫 발언도 ‘분열과 갈등 아닌 화합과 대화로 만드는 나라’가 아닌가.
그렇다. 화합 없이는 정화된 사회, 품위 있는 풍요로운 삶도 통일염원도 이루기 어렵다. 화합에는 갈등상처의 치유가 우선돼야 한다. 치유 없이 어찌 화합을 기대 할 수 있을 것인가. 올 한해를 그래서 국민화합의 원년으로 삼아야 할 것이며 불교 교단은 이 땅의 갈등구조 치유에 앞장서야 할 책무가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낮은 정치수준과 부조리한 경제구조가 오늘의 문제라 쉽게 생각해 버린다. 정치와 경제구조만 바뀌면 세상이 좋아 질 것이라 믿는다.
과연 그럴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서양 근대 사상이 가져 온 물신주의의 끝없는 추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로인한 정신의 황폐화, 공허해진 우리들의 마음이 오늘의 온갖 갈등과 상처를 만들어 왔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진리의 부재, 철학의 빈곤이 그 원인으로 이점을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정신의 혁명’을 일깨운 석가모니 부처님의 종교, 그 ‘진리의 종교, 마음의 종교’를 전하고 있는 불교 교단, 그리고 불자들이 국민화합을 위한 갈등 치유에 앞장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그동안 ‘부처님 마음’을 세상에 올바로 전하는데 소홀했던 점 또한 자성해야 할 일이다.
진리는 어떤 권력이나 주의 주장보다 상위의 개념이며 이를 바탕에 두지 않고서는 정치도 경제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의 역할을 해 낼 수 없다. 용수는 대지도론에서 불자가 의지해야 할 것은 진리뿐이라 했다. 그것이 어디 불자뿐이겠는가. 진리의 정법은 중생들의 삶을 요익하고 안락하게 이끄는 최상의 가르침인 것이다. 진리에 대한 믿음과 나라 사랑은 둘이 아니어서 사회통합도 민족통일도 진리의 반석 위에 구축되어야 한다. 진리의 토대 없는 나라사랑이나 민족통일은 헛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난 한해 우리가 피곤했던 것은 자기만이 옳다며 내편 네 편을 가르는 패거리 의식의 고질적 편견과 득세에만 값어치를 부여하고 이에 환호하는 천박함이었을 것이다. 상대방에 자신과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갈등해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불가에는 상불경(常不輕)보살이 있다. ‘내가 당신들을 공경하고 감히 가벼이 여기지 않노니….’ 우선 불자들만이라도 이 말을 새겨 ‘모두 상불경보살이 되는’ 노력을 시작하자.
그동안 ‘맑고 향기롭게’ 라든가 ‘인간4사 운동’등 사회를 향한 불가의 메시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며 그 성과 또한 적지 않았다. 이제 한국사회에 화합을 위한 메시지를 만들어 띄우도록 하자. 불자들의 올바른 행이 앞장 서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자들은 진리의 주춧돌을 하나하나 쌓아 가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올해를 불심으로 국민 대화합의 길을 여는 원년으로 삼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