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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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자제공덕회 회주 증엄 스님-下
인순 대사는 간단한 스승과 제자의 예를 갖추고 증엄 스님에게 '증엄(證嚴)'이란 법명과 '혜장(慧璋)'이란 자(字)를 내렸다. 증엄 스님은 곧바로 임제사에서 열린 삼단대계(三壇大戒 : 사미니계, 비구니계, 대승보살계를 수여하는 계단)에 참석할 수 있었다.

한달 뒤 증엄 스님은 화련으로 돌아와, 한 노 거사의 발심으로 보명사 뒤쪽에 소박한 목재 가옥을 지었다. 이곳에서 스님은 잠을 줄이고 소식하며 경을 외우거나 사경하며 수행했다. 때로는 연비(燃臂) 공양으로 간절한 중생구제의 서원을 염원하는 기도를 하기도 했다.

1964년 봄, 스님은 그동안의 공부를 회향하기 위해 화련 자선사에서 처음으로 <지장경> 강의에 나선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4명의 출가 제자가 사제의 연을 처음으로 맺었다. 스님은 수행생활을 하면서 보시금을 바라는 인위적인 법회를 열지 않았으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청규(淸規)를 철저히 지켰다. 제자들에게도 자급자족의 정신을 강조한 스님은 1995년 봄부터 종이나 옷, 신발의 원료가 되는 꽃을 키워 팔아 사찰 재정으로 삼기도 했다.

중생구제를 향한 증엄 스님의 서원은 뜻밖의 사건을 목격하고 난 뒤에 더욱 확고해진다. 1966년 스님은 한 진료소에서 위출혈로 수술을 하게 된 제자의 부친을 찾아갔다가 병실 근처에 피가 낭자한 사람을 발견하고, 어디서 온 사람인지 궁금했다. 옆에 있던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원주민 소녀가 임신을 해 산길로 7∼8시간 달려왔지만 의료비와 보증금이 없어 다시 되돌아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증엄 스님은 "두 생명이 같은 생명인 줄 모른단 말인가? 이곳에 생명의 소중함이 과연 있단 말인가?"며 비통한 심정을 가눌 수 없었다.

출가 본래의 뜻은 명리(名利)를 떠나는 것이었건만, 돈이 없어 생명이 죽어가는 어처구니 없는 경험을 하다보니, 스님은 '돈으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금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돈이 있다고 한들, 입원 시간에 맞추지 못한다면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스님은 돌연 경전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1000개의 손과 1000개의 눈을 가진 관세음보살이 동시에 여러 곳에서 고통과 재난을 구해주듯이', 만약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을 가진 500인이 각처에 흩어져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처럼 중생의 아픔을 구제할 수 있지 않을까? 500명 중생의 손이 모이면 한분의 천수 관세음보살이 되지 않을까? 이는 경전속의 관세음보살님을 중생의 모습으로 살려내는 것이다.”

500명 단위로 조직된 단체가 생활 가운데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의 역할을 함으로써 출세간의 정신을 다시 입세간(入世間)으로 되돌린다는 이런 발상은 '성실, 정직, 믿음, 실천'을 추구하는 자제공덕회의 생명 사랑과 자비실천의 기본구조가 되었다.

그러나 증엄 스님의 중생구제는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고뇌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큰 시장 바구니를 만들어 중생의 육체를 공양(供養)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신을 지혜로 충만케 하고 자비로써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합니다."

증엄 스님은 보살행의 원리인 '자비희사(慈悲喜捨)'를 사회사업의 실천이념으로 구체화시킨 선구자였다. '자'는 자선과 국제구호, '비'는 의료와 골수기증, '희'는 문화와 지역사회사업, '사'는 교육과 환경보전사업 등으로 세분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구제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증엄 스님은 제자들과 신도들의 마음에서 우러난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자제공덕회 전신인 불교극난극복자제공덕회 회원 30명이 매일 5원씩 모았던 '대나무 저금통'은 이런 정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제공덕회의 성공비결의 하나였다. 아울러 재정의 독립 운영, 투명한 후원금 관리, 1만5천여 자제위원의 적극적인 모금활동 등도 불교사회복지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증엄 스님은 현재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31개국 132개 지회 소속 400백만여 회원과 5개 병원, 종합대학, 방송국 등 대규모 조직을 갖춘 세계 최대의 자선단체를 통해 보살행과 포교사업을 펼치고 있다.
김재경 기자 | jgkim@buddhapia.com |
2003-01-23 오전 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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