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 종합 > 사람들 > 인터뷰
'1%의 나눔'으로 세상을 아름답게-아름다운 재단 박원순 상임이사
"요새요? 돈 쓰는 법을 연구하죠. 진짜 자본주의와 가짜 자본주의의 변별 기준이 돈 쓰는 법에 있다는 생각에서예요. 정승 같이 써야 진짜 자본주의죠. 돈,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잖아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것이지요."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아름다운 재단'에서 박원순(46) 변호사를 만났다. 90년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시민운동을 이끌었던 그는, 그 자리에서 물러난 후 2년 째 아름다운 재단의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헐렁한 양복 차림에 학생들처럼 스포츠 베낭을 메고 나타나 악수를 건네는 박 변호사. 그의 모습에서 지사형의 인권변호사나 시민운동가의 이미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는 지금 '1%로의 나눔'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 청년이다.

돈을 잘 쓴다는 것은?

'아름다운 재단'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자, 달변가인 그도 한동안 숱없는 머리를 긁적거린다. "93년 하버드 대학에 잠시 머물 때였죠. 낙엽이 수북히 쌓인 캠퍼스를 산책하다 벤치 위에 누가 놓고 간 하버드 대학 교지를 펼쳐봤어요.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나 궁금했기 때문이죠."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도로시 파커라는 미국 작가의 글귀였다. 기부금이 담긴 봉투를 복지재단에 전하는 것을 뜻하는 "수표가 들어 있습니다 (check enclosed)."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누겠다는 그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기대했던 제 생각과 달리 참 평범한 말이더군요."

이때 받은 인상을 마음 속에 곱게 간직한 박 변호사는 아름답게 돈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자기가 가진 것의 1%로 남과 함께 나눠 보자고 만든 것이 아름다운 재단이다. 재벌들의 재산상속 문제를 놓고 참여연대가 주장한 것이 재산 형성의 합리와 투명한 분배였다면, 지금 그는 돈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돈을 잘 쓰자는 것이다.

"득도한 싯타르타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진흙은 사실 더러운 것이 아니죠. 그것은 우리의 눈에 더럽게 비친 것일 뿐 진흙은 수많은 생명이 살아가는 안식처죠. 돈 문제도 그렇다는 겁니다.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돈에는 그 사람의 숭고한 마음이 들어 있는 거죠." 이렇게 돈을 다르게 보고 바른 사용하는 법을 찾아보자는 목적으로 아름다운 재단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부의 축적을 위해 전력을 기울여 왔죠. 자,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어떻게 쓸까 고민해야 할 때가 됐어요. 부나 명예만으로는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없는 거예요. 성공한 삶이 무엇인가 우리 스스로 돌아봐야 할 때가 된 거죠."

어린 시절의 기분을 지금 여기에…

뜻밖에도 박 변호사는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말한다. 80년 잠시 검사 일을 하다 그만 두지 않았다면, 잘 나가는 공안 검사가 됐을 거고, 그랬다면 '인권'은 법률 조항 어디쯤의 것으로 생각했을 거라는 의미에서.

박 변호사는 "내 인생에 있어서 많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길을 함께 갈 수 있었기에 후회가 없다"며 "돈과 권력에 가까이 있었다면 마음의 평화는 그만큼 멀리 있을 거"라고 말한다. 즉 "자기가 가진 것의 1%씩만 나누어도 내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그것들이 좋은 인연이 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1% 나눔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그이지만 정작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한다. 크레용도 살 형편이 못 됐던 가난한 유년 시절. 간신히 배고픔을 참으며 다녔던 서울 유학시절. 칼날 같은 긴장감 속에서 독재정권과 대결하며 살았던 인권변호사 시절. 바쁘게 뛰어다녔던 참여연대 시절. 이런 그의 삶은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한가로움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어린 시절에 보았던 개울과 뒷산, 갈대 숲, 전깃불이 없는 시골을 밝혔던 호롱불. 이런 것들만이 험한 세월을 견디는 힘이 돼 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결국 이런 곳에서 멀리 있지 않아요. 가난했지만 따듯했던 시골 사람들, 그들과 함께 살면서 느낀 것을 지금 되살려 보자는 것이죠."

끝맺음도 아름다울 수 있기를

요새 박원순 변호사는 자신의 처음 모습대로 변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곰곰해 생각해 본다. 함께 시민운동을 했던 많은 사람들의 달라진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정치권으로 들어가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나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아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일도 많이 겪다 보니 지금은 무덤덤해진 편이지만요." 그래서 박 변호사는 아름다운 나눔 못지 않게 아름다운 끝맺음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도 많다.

5년 10년을 사귀면서 서로가 연륜이 쌓이고 있지만 그대로 남아있는 주변 사람. 박 변호사도 그들에게 늘 변함 없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 사람들과 어울려 인간 숲을 이루고 아름다운 나눔의 뜨락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 이것이 박 변호사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끝맺음이다.

◇박원순은

80년 사법고시에 합격, 82년 잠시 대구지검 검사 생활을 하다 그만 둔 후 지금까지 줄곧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고 있다. 94년 참여연대 사무처장, 2000년 총선시민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했으며 현재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를 맡아 기부운동을 통한 사회 개혁을 실천하고 있다.

발족 만 2년이 되고 있는 지금, 아름다운 재단에는 2432명이 동참자가 뜻을 함께 하고 있다. 그들에 의해 '심산 기금', '대니 서 기금', '의인기금', '김군자 할머니 기금' 등이 모여지고 있다. 하지만 모금액 5억원을 목표로, 시민운동가을 지원하기 위한 '심산 기금은이 1천만에 불과하고 그밖의 기금들도 목표액 10%를 채우지 못한 상태이다. 우리나라 기부 문화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부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낯선 문화다.
저서 <국가보안법연구>, <아직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 <역사를 바로 세워야 민족이 산다> 등 다수.

글=강유신 기자
shanmok@buddhapia.com
사진=임민수 기자
yminsoo@buddhapia.com
2002-10-07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11.2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