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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찾는 이들에게 편안하게 카운슬링해 스스로 법을 찾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역할이라는 법주스님. 그는 조급하게 도를 얻고자 하는 것은 기법을 닦는 자들의 욕망이라고 단언했다.
스님은 수행의 원리를 모른 채 곧바로 화두선에 매달리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비판하며 스리랑카나 미얀마 등지에서 위빠사나를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우 98%가 마하시 전통의 위파사나를 도입해 다양한 위파사나 행법을 접할 통로가 차단되고 있어요. 마하시 전통은 지도하기 쉽고 단기간에 효과를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수행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지도해 줄만한 지도자가 부족한 실정이죠.”
실제로 법주스님 역시 마하시 계통의 위빠사나를 수행하다 정신적 육체적인 장애에 부딪쳐 고통을 당한 후 부처님께서 직접 닦은 ‘출입식념’을 공부하게 됐다고 한다. 모든 수행법의 근간은 경전이며, 수행에 앞서 원리와 속뜻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생각에서였다. 즉, 무엇이든지 ‘부처님 법’ 앞에 수식서가 붙으면 위험성을 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방죽선원에 오면 우선 열권의 불서를 기본적으로 읽어야 한다. <사성제> <여름에 내린 눈> <붓다의 옛길> <싯다르타의 길> 등 근본불교와 관련된 주요 저서들을 숙지해 원리를 알고 수행에 임하도록 돕는다.
법주스님은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진리의 꿀만 따먹고 다니다가 부처님 법에 취해서 산 사람’이라고. 그는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15여년간 미얀마, 스리랑카,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대만, 중국, 티베트 등으로 담마 여행을 하다 전재산을 다 써버렸다. 그래도 그는 “바른 법 못 만났으면 아마 폐인이 됐을 겁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 엄청난 댓가를 얻었으니,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수행은 냉정한 사람을 따뜻하게, 이기적인 사람을 원만하게 만든다. 숨쉬고 사는 인간의 출입식념 수행을 통해, 나쁜 에너지를 좋은 에너지로 변화시켜 자비심 넘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에 다름아니다. 법주스님의 얼굴에 언제나 자비(metta)의 미소가 흐르는 것도 이런 수행관 때문인지 모른다.
◎ 아나파나사티 수행이란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면전에 마음챙김(sati)를 두고 들어가는 숨과 나오는 숨을 관찰하세요. 처음에는 통증과 번뇌와 망상으로 힘이 들지만 관찰의 힘이 강해지면 마음이 집중되어 고요해질 겁니다.”
지난 9월 14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 2동에 자리한 아나파나사티(Anapanasati, 출입식념) 전문수행처인 연방죽선원. 20여 불자들이 선원장 법주 스님의 지도에 따라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날은 처음 이곳을 찾은 이들을 위해 수행의 기초부터 다시 설명하는 법회. 참선, 염불, 위빠사나 등 다양한 수행법을 체험한 이들이 섞여있어서인지, 행법에 앞서 수행법의 원리와 의미에 대한 문답이 오고 갔다.
“아나파나사티는 무슨 뜻인가요?”
“'아나(Ana)'는 들숨을, '파나(pana)'는 날숨을, 그리고 '사티(sati)'란 관찰, 알아차림, 마음집중, 마음챙김을 뜻합니다. 들숨과 날숨, 즉 호흡에 마음을 집중하여 관찰하는 것이 '아나파나사티' 수행입니다.”
어려운 불교용어들이 문답으로 오고갔지만, 다들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다. 선원 주변에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서강대 등 대학이 밀집한 지역이어서인지 수련생중에는 보살은 없고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대다수다.
남방불교의 수행법을 따르면서도 '위파사나'라는 말 대신 '아나파나사티'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연방죽선원. 이 곳에서는 미얀마의 마하시 선사 계통의 위파사나 수행법 처럼 명칭붙이기 등의 특별한 테크닉도 없고, 경행(걸으면서 발을 관찰)에 치중하지도 않았다. 단지 자신의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을 관찰(sati)하라고만 한다.
한역으로는 ‘안반수의(安般守意)’라고 번역되는 아나파나사티 수행에서는 특별한 기교나 방법은 없고, 들어가는 숨과 나오는 숨을 관찰함으로써 마음챙김을 개발토록 한다. 처음에는 통증과 번뇌와 망상으로 힘이 들지만 관찰의 힘이 강해지면 마음이 집중되어 고요해 진다. 성성하게 깨어 집중된 마음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깨달아 궁극적으로는 법(삼법인)을 직접 체험하게 하며, 고통과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이 수행의 목적이다.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의 정각은 아나파나사티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불설대안반수의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들숨과 날숨에 대한 관찰', 즉 아나파나사티를 통해 자재와 자비의 마음을 얻게 됐으며 무위의 경지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 법주스님의 설명이다.
'팔정도'를 올바르게 사유하고 '정념'(samma-sati : 正念)을 개발하기 위해 아나파나사띠 수행을 전하고 있는 연방죽선원. 스스로 '고귀한 여덟겹의 길, 팔정도 실천모임‘(Noble Eightfold Way Society)라고 부르는 연방죽선원은 그래서 '초보자 전문 수행처'임을 자부한다. 도(道)는 먼 곳에 있지 않고 우리의 일상속에 가까이 있다는 생각에 ‘눈 높이 사랑, 눈 높이 교육’을 지향하는 게 연방죽선원의 매력이다.
남방과 북방, 소승과 대승이라는 이원론적인 개념을 떠나 부처님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탐구하고, 법(Dhamma)의 본질을 찾아 고뇌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연방죽선원의 이런 넉넉함 탓인지, 이곳을 찾는 불자들은 유독 구법(求法)을 향한 원력이 깊다. 선원을 직접 찾아오는 직장인들은 대부분 신행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들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교수, 대학원생 등 지식인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 중에는 참선, 염불, 아봐타, 위빠사나 등 다양한 행법을 직접 체험해 본 수행자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지난 5월부터 한 차례도 빠짐없이 정기 수련회에 참석중인 신익찬(46) 제일투신 준법감시인은 20여년간 화두선을 닦았으며, 하순식(45, 동불사 상임법사) 현대자동차 차장은 미얀마에서 직접 위파사나를 배웠을 정도로 수행 이력이 깊다. 지난 96년 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하다 정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호흡을 관찰하며 마음을 챙기기 시작한 지관엽 변호사도 이제 아나파나사티 수행의 전문가가 되었다.
물론 대학생들과 인터넷사이트(lotuspond.compuz.com)에는 초보에서부터 스님 등 전문수행자에 이르기까지 230여 회원들이 다양한 수행이력을 갖고 있다. 기초교리에서부터 전문적인 수행기법에 이르기까지 게시판 등을 통한 수행문답이 활발하고 정기적인 집중수행이 오프 라인에서 벌어진다. 지난 6월에는 세계적인 미얀마 고승 우조티카 스님을 초청, 연방죽선원과 경주에서 집중수련회를 갖기도 했다.
“연방죽선원은 다양한 행법을 익힌 수행자들이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죠. 이곳을 통해 진정 자신이 무엇을 찾는가를 알게 됩니다. 마치 병원이나 상담소과 같은 곳이라 할까요?
박은조(23, 이화여대 4년)씨는 연방죽선원이 수행상의 장애를 만난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곳이라고 귀뜸했다.
연방죽선원의 정기 수행시간은 월~토요일 오후 7~10시와 일요일 오후 2~10시, ‘불교와 수행’에 대한 정기 설법은 토요일 오후 5시에 열린다. 10월부터 한달간(매주 3회)은 인공지능 연구의 권위자인 김사철 박사를 미국에서 초청, ‘붓다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주제로 특강이 있다. (02)334-1763
김재경 기자
jgkim@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