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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에 추대된 이후 생활에 변화가 있으신지요?
-“개명불개체(改名不改體)라. 이름은 바뀌었지만 본바탕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근본자리에서 본다면 이름이 하나 더 붙었다고 해서 이 산승이 뭐 달라진게 있겠습니가? 또 무엇이 변한게 있겠습니까? 옛말에 지인무명(至人無名)이라고 했습니다. 지극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지위와 이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출가인에게 이름과 지위는 따지고 보면 자기를 더럽히는 일입니다. 부처님은 84,000가지 위의(威儀)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말로 해석하면 대단한 권위를 가지고 계셨지만 부처님은 오직 만덕(萬德)으로 중생(衆生)의 복전(福田)이 되고 대비(大悲)로서 이웃을 사랑하고 구제(救濟)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나는 다만 길을 가르킬 뿐이다. 그 길에 이르고 못이르는 것은 나의 허물이 아니라 너희들 허물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현상계에서는 분명 달라진게 있으니 종정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불조(佛祖)의 법맥이 끊어지지 않게 면면히 이어지게 하는 일이 제일 큰일이고 또 가장 중요한 일이겠지요.”
△앞으로 종단운영 방침을 정한 교시를 내려주셨는데요. 그속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 주십시오.
-“산승은 ‘지계청정(持戒淸淨) 견성성불(見性成佛) 중생교화(衆生敎化)’를 종단운영의 기본방침으로 정했습니다. 계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성철큰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계는 받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계는 받을 때 이미 지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말입니다. 계율과 청규를 통하여 선종본래의 청백가풍(淸白家風)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계율은 자기를 맑히고 종단(宗團)을 청정(淸淨)케하는 근본입니다. 수행인이 맑고 깨끗한 정신을 가지고 있고 교단(敎團)이 청정할 때 모든 사람들의 귀의처(歸依處)가 될 수 있습니다. 따지고보면 승가(僧伽)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마음을 가진 인간(人間)의 공동체(共同體)입니다.
그리고 종교의 목적이 구제와 구원에 있듯이 종단은 지금보다 교화(敎化)의 지평(地平)을 확대해야 합니다. 화엄경에서도 부처님은 교화해야 할 지역이나 그 대상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다양화된 사회, 정보화된 사회에서는 포교도 전문화되어야 합니다. 종단의 실무 책임자들께서 이러한 점을 잘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제도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수행과 교화를 중심으로 종단이 운영되도록 고쳐야 할 것입니다.
수행자 각자가 인천(人天)의 사표(師表)가 되어 있어야 중생들은 가슴과 귀를 열게 됩니다. 견성성불은 바른 안목을 갖춘 납자들이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잇는다는데 가장 큰 의미를 가집니다. 원효스님은 ‘자죄(自罪)를 미탈(未脫)하면 타죄(他罪)를 불속(不贖)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안목이 열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안목을 열어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내 공부에 철저하자는 말입니다. 이는 수행풍토의 회복으로 종풍선양과 연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수행력을 사회로 되돌릴 때 참으로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출가하면서 ‘나는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교화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수행이란 출가자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재가자(在家者)는 말할 것도 없고 남녀노소(男女老小) 황백흑인종(黃白黑人種) 축생(畜生) 심지어 무정물(無情物)까지도 포함하는 수행법입니다. 모든 중생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각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스스로가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출가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을 자타불이(自他不二)의 마음과 바른 안목으로 가르쳐주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종단의 가장 큰 현안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종단의 가장 큰 현안은 화합입니다. 종단발전은 화합이 시작입니다. 그 다음이 교육이지요. 교육을 제 궤도에 올려 놓아야 합니다.”
△종답화합을 위해서는 멸빈자 문제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멸빈은 우리 종단의 가장 비극적인 일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최근 94년 98년 종단사태로 인한 멸빈은 현재까지 종단의 현안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멸빈도 종헌 종법에 의한 것이여야 하고 사면 복권 역시 종헌 종법의 적법한 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종회와 총무원 호계원 그리고 원로회의 등 종단의 입법 행정기관들의 합의와 적법한 법절차를 밟아 사면 복권을 종정에게 정식으로 건의해 오면 그 때 고려해 볼 것입니다. 종교가 다른 문화보다도 슬기롭다고 하는 것은 구원과 구제의 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과 구제는 종교의 생명입니다. 만약 종교에 구제나 구원이 없다면 종교도 일반문화와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자기구원의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참회입니다. 참회는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서원(誓願)입니다. 모든 문제는 참회와 서원이 있다면 잘 해결될 것으로 믿습니다.”
△지난해 ‘해인사 청동대불’ 건립에 대한 견해차가 발생했는데요?
-“가장 친환경적 교리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종교가 불교입니다. 하지만 해인통일석가모니불 건립계획으로 인하여 절집안 문제가 사회문제로 까지 비화되어 종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들의 심려를 끼쳐드린데 대하여 송구하게 생각하며 이 모든 것이 해인총림의 제일 어른인 산승이 부덕(不德)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전대(前代)의 어른스님들의 ‘신행ㆍ포교문화도량’ 건립의 유지를 받들고자 한 순수한 마음에서 발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총림임회 종무회의를 통하여 총림법에 의한 절차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문화재 관리청으로 공문을 보내 문화재 전문위원 등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해인사는 전문가의 견해를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불교에서 존상(尊像)을 조성하여 예배공양(禮拜供養)하고 수희찬탄(隨喜讚嘆)하는 것은 불교의 신념(信念)과 직결된 일입니다. 그리고 신념과 교리가 결합될 때 그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종교의 신비가 이루어지며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예술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런 면도 함께 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스님께서는 조사선 수행으로 평생 한길을 걸어오셨습니다. 불교수행의 궁극적인 가치는 무엇입니까?
-“수행은 자기실현의 길입니다. 자기의 실상을 자각해야 존재의 속박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무명(無明)과 탐욕으로 인해 자기를 잃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사유와 정진으로 내심자증(內心自證)하며 자성(自性)을 증오(證悟)해야만 나고 죽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삼계(三界)의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명(無明)과 탐욕에서 자각(自覺)의 눈을 떠야 합니다.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일이 출가의 본분입니다. 백장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 일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원래 얽매임에서 벗어난 사람인데 도리어 얽매임 속으로 들어가 부처를 지었다.’
승려는 수행을 전문으로 하는사람입니다. 수행자의 모든 위상은 수행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수행자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가난부터 배워야 합니다. 풍요 속에서는 절대로 도인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고 했습니다. 춥고 배 고파야 공부할 마음을 낸다는 것이 절집안의 공부입니다. 현재의 물질적 풍요가 수행에 가장 장애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송나라 때 굉지정각(宏智正覺1011-1957)선사는 대중들에게 늘 이렇게 훈계했습니다. ‘욕심을 적게하고 만족할줄 알아서 부귀를 탐내지 말라. 배고픔과 목마름을 참고 수행에만 뜻을 두라.’ 하지만 현대사회 물질적 풍요시대에 수행자의 가난은 ‘선택하는 가난’이 되어야 합니다. 가난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이건 더 어려운 일입니다. 소욕지족(少欲知足)이라고 했습니다. 토굴에서 혼자서 살아보니 정말 사람 하나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 좋아하시고 평소에 강조하시는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내근극념지공(內勤剋念之功)하고 외홍부쟁지덕(外弘不爭之德)하라’란 말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안으로는 부지런히 남모르게 수행을 하고 밖으로는 다투지 않는 덕을 쌓는다는 말입니다. 수행은 승려의 본분이니까 당연히 해야할 일이고 또 인연따라 여러 가지 소임을 살다보니 덕도 쌓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안팎이 잘 조화되는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산승의 생활철학입니다. 정직하게 살고 성실하게 살고자 애쓰고 늘 자기의 분수를 알고서 스스로를 돌아보고자 애씁니다.’
해인사= 김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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