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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 깨쳐 중생제도 해야-
혜암(慧菴·79) 조계종 종정 예하가 1999년 5월 14일 오전7시30분 해인총림 원당암(願堂庵)에서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선승으로 94년, 98년의 종단 개혁불사를 이끈 스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수십년 장좌불와의 꼿꼿한 기품을 견지했다.
스님은 IMF관리체제와 최근의 종단사태를 언급하며 “역경이 지나간 후에 좋은 일이 오는 법이니 슬기롭게 극복해나가면 반드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또 “사람의 몸을 받았을 때 발심해서 부지런히 정진할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불기2543년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의미로 열린 기자회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실수가 태산만하면 성공도 태산-
-고난 회피말고 선물처럼 반길것-
◇14일 해인사 원당암 뜰을 거니는 조계종 종정 혜암스님 .“본심을 깨달아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불교수행의 궁극”이라며 “낮인지 밤인지 모를 정도로 정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정 예하께서 취임하시면서 내린 교시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우리 종단이 혼란했던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지고 막행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계율을 엄정하게 지켜서 승가의 본분을 다하자는 의미에서 ‘지계청정(持戒淸淨)’을 강조했습니다. 나아가 종단의 바른 가풍을 드러내자는 ‘종풍선양(宗風宣揚)’, 부처님의 법을 전하고 중생을 제도하자는 ‘전법도생(傳法渡生)을 당부했습니다.
-종정에 추대된 이후 생활에 변화가 온 것은 없습니까?
▲저는 가능한한 바깥 출입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부처님 점안법회에는 종종 갑니다. 큰스님이 점안해주지 않으면 누가 해주느냐고 조르는 경우가 많아 가게 되는데, 앞으로는 사양할 방침입니다. 종정의 직분에 충실하면서 남은 여생을 토굴에서 보낼 계획입니다.
-스님의 평소 일과가 궁금합니다.
▲나는 재가불자들과 함께 선불당(選佛堂)에서 밤새 정진합니다. 선불당은 동·하안거에는 1백여명이, 봄가을 산철에는 20~30여명의 재가불자들이 정진하는 대중선방인데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입제·결제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새벽 3시가 되면 예불을 올리고 아침 7시경에는 목욕을 합니다. 공양은 오전10시경 하루 한끼만 먹습니다. 오후에는 운동삼아 도량을 돌며 풀을 뽑거나 청소를 합니다. 저녁에는 처소인 염화실에 잠깐 들러 우편물등을 점검하고 다시 선불당을 향하는데 장좌불와를 계속 하다보니 취침과 기상시간이 따로 없게 되었어요.
-불교수행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스님께서는 돈오돈수의 가풍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주 간명합니다. 팔만대장경을 다 합치면 마음 심(心)자 하나로 대변할 수 있습니다. 오직 본심을 깨달아 중생을 제도하는 것 외에는 다 외도입니다. 일체중생을 떠나 다생부모가 없고 다생부모를 떠나 일체중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견성하면 곧 다생부모를 건지는 것이니 이 얼마나 가치로운 일입니까?
일본서 공부하다 우리나라에 돌아온 뒤 제방의 선지식을 닥치는대로 찾아다녔습니다. 당시 가는 곳마다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돈오점수법(頓悟漸修法)을 얘기하고 있었는데 성철스님과 그 도반인 향곡스님만은 돈오돈수법(頓悟頓修法)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의증이 생겨 마조나 백장, 황벽스님등의 어록을 살펴보니 단박에 깨쳐 부처를 이루는 돈오돈수법이 바른 법이요, 점수법은 소승법이고 방편법이며, 교는 장엄물이다는 이야기가 나와 있었습니다. 돈수법은 일언지하에 돈망생사하는 법이요, 일초직입여래지의 가르침입니다.
-평소 스님께서 제자들에게 강조하시는 5가지 계행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첫째 소식(小食)하라고 가르칩니다. 둘째는 용맹정진을 주문합니다. 이 세상에 제일 수지맞는 일중의 하나가 공부하다 죽는 일인데 목숨내놓고 정진하다보면 견성이 가까워오고 죽음은 멀어집니다. 견성하면 생사를 넘어서는 까닭입니다. 마치 암탉이 알을 품듯, 고양이가 쥐를 잡듯 사무치고 간절하게 정진해서 낮인지 밤인지, 밥을 먹었는지 건너뛰었는지 모를 정도로 정진해야 합니다.
셋째는, 안으로는 본심을 깨닫고 밖으로는 남을 도와야 합니다. 이 세상에 옳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참선공부하는 것과 남을 돕는 일뿐입니다. 넷째, 주지 등의 소임을 가급적 맡지 말라고 합니다. 차별적으로 보면 각자의 소임이 다 있어야 하지만 소임을 맡다보면 공부는 온데간데 없고 집착하게 되니 멀리 하라는 겁니다. 천하총림이 다 망해도 눈하나 꿈쩍하지 말고 내 공부만 할 것을 당부합니다. 소임을 살더라도 공행(空行)을 닦아야 합니다.가도 가는 바 없이 가고 먹어도 먹는바 없이 먹으면서 해도 하는 바 없이 행해야합니다.끝으로 일의일발(一衣一鉢)로 청빈하게 살것을 당부하지요.출가수행자들은 원래 탁발하면서 공부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장좌불의를 하게 된 계기는.
▲행자시절에 옛 어록을 보니,근기가 뛰어난 자는 7일안에 견성할수있다고 해요.그길로 공양 주노릇 팽개치고 토굴로 들어갔습니다.용맹심을 내어 일주일간 눕지도 않고 자지도 않은채 정진을 했어요.그런데 1주일이 지나도 별다른 견처가 열리지 아니해서 다시 1주일간 장자불 와를 했고 또 1주일,1주일하다가 어느덧 50여년이 흐르게 되었습니다.이젠 눕고 싶어도 불편 해서 눕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자들에게 한 말씀 내려 주십시오.
▲사람 몸받기 어려우니 부디 열심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괴로운 일이 지난후에 즐거운 일 이오는 법이니 어려움을 열심히 극복해나가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되어있습니다.여려운 난관이나 재앙을 긍정적으로 보십시오.실수가 주먹만 하면 성공도 주먹만 하고, 실수가 허공 만 하면 성공도 큰 법입니다.고난이 닥치면 회피하지 말고 좋은 선물이 왔다고 반길일입니 다.지난 종단사태도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1999.5.19 현대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