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롯 여성불교연합회, 불교여성회 등을 중심으로 여성 불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 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힘입어 비구니 스님들이 스스로의 뿌리찾기에 나섰다. 비구 승단의 일부로 묻혀온 비구니 승단의 역사를 찾고자 비구니 스님 20여명이 모였다. 두달전 김포 중앙승가대학 교수회관인 정진관에 새로 자리잡은 '한국비구니연구소'(소장 본각스님, 031-980-7775)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이다.
연구소는 소장인 본각스님(중앙승가대 교수)과 황인규 연구원(동국대 강사), 학인 연구원 14명을 비롯해 국내외 교수 10여명(연구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99년 11월 창립이래 학교의 정식인가를 받지 못한 열악한 상황아래서도 비구니사 정립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본각스님으로부터 그간의 어려움과 서원을 들어보았다.
- 불교의 핵심교리인 연기설, 무아, 공 사상에는 성(性)에 대한 차별적인 개념이 없습니다. 하지만 불교내의 성차별적인 문화는 불교가 발원한 인도가 남성중심적인 사회였고, 유교문화권인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래되면서, 계급적 가부장적 문화와 맞물려 여성 차별적인 요소를 지닌 건 아닐까요. 비구니연구소를 만든 목적은 이런 차별적인 문화를 개선하려는 의지로 볼 수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저희들은 비구니사의 정리라는 학문적인 과제가 우선입니다. 팔경법 등 예민한 문제는 비구니계에서 가능한 논의하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비구니연구소는 비구니와 관련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술단체로서 자리매김하고 싶어요.
-비구니사 연구를 발원한 계기는 무엇인지요.
▲99년 10월 연구소를 만들기 얼마 전, 대한매일신문에서 ‘한국 여성지도자 명감’을 작성한다고 제게 연락해온 일이 있어요. 불교계 여성지도자에 관한 자료를 부탁하는 거예요. 기독교계에는 일찍부터 박마리아 여사가 낸 <기독교와 한국여성 40년사> 등 많은 자료가 누적돼 있는데, 역사가 2000년에 가까운 불교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자료 하나 없었어요. 그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말하자면 비구니들의 인명마저 정리되지 않은 현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고자 발심하게 된것이죠. 조만간 300여명을 선정해 전국비구니회의 감수를 거친 후 '한국 여성지도자 연감'에 추천할 생각입니다.
-학교의 공식 인가를 받지 못해 그간 말못할 어려움이 많았겠는데요.
▲연구활동을 위한 공간 및 예산 확보와 스님들의 이해 부족 등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올해까지는 한마음선원장 대행스님께서 지원한 5천만원의 연구비로 지탱할 수 있었지만 내년부터가 문제입니다. 년간 3천500만원 정도의 예산이 들지만 학교측은 비인가 연구소인 관계로 세미나실과 자료실 등 공간을 제공하는 선에서 비공식 지원만 하고 있어요. 그리고 학인들은 노스님들 친견하러 다니다 매도 많이 맞았지요. 왜 수행은 안하고 쓸데 없이 돌아다니냐고 혼이 난거죠. 지난해까지 900여 비구니 스님들을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연구생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어려웠겠죠. 물론 학인들과 불교계 신문과 잡지 등을 뒤져 뒤져 40여년간의 산재된 기록을 모으는 작업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국내외의 비구니사 연구현황은 어떻습니까.
▲국내외를 막론하고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사료 역시 미미한 실정입니다. 일본에는 <조동종 비구니사>란 책이 있는 정도예요. 유럽,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비구니관련 논문들이 다소 있어서 거의 입수했습니다. 사료가 부족한 만큼 각종 사서와 금석문에서 비구니 및 우바이 관련 자료를 수집해 해독하는 작업이 절실합니다.
-비구니연구소의 활동에 대한 국내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해외에서 오히려 한국 비구니사에 대한 관심 높아 회원으로 참여하려는 교수들의 편지와 관련 논문들이 도착하고 있어요. 학교로부터 정식 인가도, 지원도 못받고 있는 연구소이지만 벌써 국내외의 뜻있는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폴 그로너 버지니아대 교수, 로버트 버스웰 UCLA대 교수, 엘리슨 핀들리 트리니티 칼리지 교수, 심재룡 서울대 교수 등과 젊은 여성학자인 조은수 미시간대 교수와 이향순 조지아대 교수 등이 연구위원으로 참여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오히려 한국 비구니 승단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요.
▲한국 비구니의 법맥은 세계적인 유산이예요. 현재 비구니 승단이 남아있는 것은 한국과 중국 뿐입니다. 일본 불교는 재가중심이어서 여성 수도자를 전통적인 비구니라고 볼 수 없죠. 중국은 문화대혁명(1966~76) 이후 대륙의 불교전통이 거의 끊어진 것과 다름없고, 대만의 비구니 승단은 대륙의 전통에 맥을 갖다 대는 것인데 그 전통이 사실 희미합니다. 다만 불광사(佛光寺) 등이 중심이 돼 비구니들의 활발한 국제 활동을 장려하고 있는 점이 부러운 점입니다. 결국 비구니 승단으로서의 형식을 지니고 규범과 절차를 지키며 거의 2000년을 지켜온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어요. 그래서 외국 학자들이 한국 비구니계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 어려운 가운데서도 많은 보람이 있으시겠어요.
▲철저한 수행의 자취를 남기고 간 비구니 스님들의 행적을 좇다보면 신심이 절로 납니다. 그런 발자취를 찾아내 알려야 후학들이 배울 것 아니겠습니까. 지난해까지 학인 연구원들이 900여 스님들을 인터뷰 했는데, 가장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큰 기억이라고들 말해요.
-향후 사업계획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비구니사>를 편찬하는 것이 장기 목표이지만, 시급한 것은 대학당국으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아 공식 지원을 받는 일입니다. 예산이 확보되어야 사업도 가능하니까요. 학술활동은 우선 비구니 강원사, 비구니 계율 정신사, 비구니 포교활동사 등 비구니 관련 13개 주제로 논문집을 발간하는 동시에 학술회의도 열 생각입니다. 학교측의 공식인가가 나오면 2003년 비구니 관련 국제학술회의도 개최할 계획입니다.
김재경 기자
jgkim@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