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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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 인간문화재 정재만씨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

시인 조지훈은 ‘승무(僧舞)’의 아름다움을 이렇듯 섬세한 언어로 표현하였다. 온갖 춤사위가 집대성된 한국 춤의 백미(白眉)인 승무는 아름다운 한편의 시로 인해 그 이름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이런 까닭에 사람들은 직접 보지 않고서도, 하이얀 고깔과 외씨버선, 휘어져 감기우고 뻗는 장삼의 날개짓으로 승무의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그리고 세상의 온갖 괴로움과 슬픔을 구도로 승화시키는 어느 이름모를 비구니를 상상하기도 한다.

춤을 추는 이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합일하는 심신일여(心身一如)의 경지가 바로 승무다. 승무의 아름다움은 무대 정면의 관객을 등지고 양팔을 서서히 무겁게 올릴 때 생기는 유연한 곡선과 하늘을 향하여 길게 솟구치는 장삼자락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비스듬히 내딛는 보법(步法)과 미끄러지듯 딛다가 다시 날 듯 움직이는 정(靜)과 동(動)의 조화도 승무를 단순한 춤 이상으로 만든다.

여기에 자진모리와 당악 장단에 맞추어 시작하는 북의 연타는 관객을 몰아지경으로 이끈다. 이 북소리가 멎으면 다시 긴 장삼이 허공에 뿌려지고 연풍대(筵風臺)를 돌아 어깨춤에 사뿐한 걸음이 곁들여지고 합장하면서 춤은 끝난다.

승무의 연원은 어디일까? 한국의 민속예술 대부분이 유래가 불분명한데 승무 또한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없다.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유혹하려고 춘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 파계승이 번뇌를 잊기 위해 북을 두드리며 추기 시작한 춤이라는 등 다양한 설이 전하는데, 불교의식무용인 법고춤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할 때 꽃비를 내리시니 가섭존자가 이를 알아차리고 빙긋이 웃으며 춤을 추었다고 전하는데, 이를 후세 승려들이 모방하였다는 설이다.

장삼·가사·고깔을 착용하고 춤을 추면서 법고를 치는 것도 불교의식무용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다. 춤사위에서도 불교의식무용의 움직임이 승무에 수용되어 있으며, 반주 음악도 염불장단으로 시작한다.

승무가 예술 춤으로서의 일반 사람들에게 부각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현재의 승무는 1900년 이후 한성준(1875~1941)의 노력으로 예술 무용으로 자리 잡았고, 그의 손녀딸인 한영숙(1920~1989)에게 이어졌으며, 한씨는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처음 지정되었다. 이후 이매방씨(1987년 지정), 이애주씨(1996년 지정), 정재만씨(2000년 지정) 등이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승무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전승되는 과정에서 승무는 불교적인 색채가 강조되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 종교적 색채가 약해지고 동작 자체의 예술성을 지향하기도 하는 등 한영숙류, 이매방류, 이애주류, 정재만류라는 다양한 유파로 변모했다.

11월 22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신비로운 승무의 대 서사시’를 공연한 정재만 교수(숙명여대 무용과)는 독무(獨舞)로 이어져 온 승무를 수십 명이 등장하는 군무(群舞)로 재구성해 무대에 올렸다.전체 무대의 한 가운데 솟아 오른 작은 무대 위에서 정교수가 독무를 선보이고, 그 주위에 연꽃을 든 무용수 30명이 등장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이번 무대에서 정교수는 신비로운 전통 춤으로서의 승무를 오늘의 제자들에게 전수하는 의미까지 담고자 했다.

움직일 듯 정지하고 정지할 듯 움직이는 춤사위. 정중동(靜中動)의 미적 구조를 넘어 돈오(頓悟)의 순간을 연상하게 하는 한국무용의 진수로서의 승무. 그러나 배우기 어렵고, 표현하기도 힘든 까닭에 많은 예비 무용가들의 관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정교수가 이번 공연을 마련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선대의 스승들이 물려준 춤을 지금까지는 보존 계승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부터는 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대중화하고 세계화하여 확대 발전시키자는 의도다. 그것만이 전통 춤의 생명을 오래도록 연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에서다.

춤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이후 매일 새벽 제자들과 함께 자신이 운영하는 벽사춤아카데미에서 수행의 방편으로 승무를 연습하는 정교수는 “승무는 우주 자연의 생성과 변화를 포착하는 무한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승무는 하나의 장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시방이 모두 수렴되는 우주적 생성의 미를 품고 있다”면서 “담는 그릇에 따라 생김새와 모양이 다르게 나타나는 공기와 물의 위대함처럼 다른 춤을 살찌우게 하는 능력을 지닌 춤인 승무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자 기자
사진=고영배 기자
ybgo@buddhapia.com
200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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