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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적인 것은 전시 작품 20점 전부를 붓이 아니라 윈도 95/98 보조 프로그램인 그림판을 이용해 그렸다는 사실이다.
"선이나 색상을 언제든 고칠 수 있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직선이든 곡선이든 결국 점 하나 하나가 모여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지요."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인 원 교수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가 된 뒤에도 ‘무얼 보면 그리고 싶어’ 이면지에 틈틈이 스케치를 하곤 했다.
15년 정년퇴임 전까지도 '컴맹'이었던 원 교수가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4년 전. 손자가 그림판에 한번 그려 보라’고 권해서였다.
4년 동안 원 교수가 마우스를 이용해 그린 84점 속에는 평생 불교 공부, 철학 공부, 인생이 다 들어있다. 그림 옆에 적어 넣은 짧은 문구는 그때그때 떠올랐던 단상을 넘어 원 교수가 움켜쥐고 살아온 '화두'다.
예를 들어, 일 주일 넘게 뼈다귀 하나, 개 백 여덟 마리를 그리면서 느낀 건 뼈다귀 하나를 놓고 싸우는 모습이 아니라 사람도 사이좋게 나눠 먹기는 어려워라는 자기 반성이었고, 부처님의 자비심이었다.
6ㆍ25때 헤어진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에는 그 시대만의 아픔이 배어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만, 예술도 인생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사는 게 곧 부처님 길이 아니겠습니까. 80 노구에도 동국대와 연세대 박사과정, 금강불교대학 강의 등으로 바쁘게 살고 있는 원 교수이기에 '그림판' 앞에 앉아 있는 모습 또한 더 이상 낯선 그림은 아니다.
권형진 기자
jinny@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