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풍’ 상·하
만해스님 지음
사랑과 나무 / 상·하 각 8천원
‘님의 침묵’으로 우리를 감동케 했던 민족시인 만해 스님. 일제 강점의 암흑시대에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였던 만해 스님이 소설까지 썼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만해스님이 1935년 조선일보에 발표했던 소설 <흑풍>(전2권)이 출간됐다. 만해 스님의 시는 연구자들이나 대중으로부터 충분한 평가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으나, 소설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소설 <흑풍>은 개화기 극심한 시대적 혼란을 겪고 있던 청말 중국을 시간적·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작품 속의 주 무대인 중국은 30년대 중반 당시 우리의 현실을 대신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국내의 독립운동을 이미지로 일제에 대한 우리 민족의 항거를 그리려고 한 것이다. 소작농 서순보의 아들인 주인공 ‘서왕한’의 일대기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단선적인 구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소재와 그에 관련된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해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주인공의 동생인 영애를 놓고 벌어지는 지주 왕언석 사이의 갈등과 현실 결탁, 직업을 구하러 상해 거리에 나선 왕한이 젊은 대학생과 경찰에게 이용당하고 거지 소녀에게 도움을 받는 과정 등은 30년대 김유정 소설에서 보여주었던 해학과 풍자의 맛을 느끼게 하는가 하면, 모순된 사회 현실과 뒤틀린 인물들에 의해 축적된 분노를 토대로 강도 행각에 나서는 왕한의 모습은 무협소설적 요소를 담아내기도 한다. 상해의 부호 장시성을 제거하고 빈민굴을 찾는 모습이나, 명탐정 양훈을 교묘히 따돌리고 상해 경찰청장 소욱을 이용해 유학길에 오른 과정, 중미 여객선에 출몰한 해적과의 일전 등에서 무협소설과 같은 긴장감과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또 미국 유학중 만난 콜난이 나중에 장시성의 무남독녀로 드러나고, 또 다른 유학생 순옥이 소욱의 정탐꾼 역할로 급파된 소욱의 질녀 정숙으로 드러나는 과정 등에서는 추리 소설적인 요소도 가미했다.
왕한이 혁명당의 일원으로 귀국하여 활동하다 소상강 인근에 터전을 잡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사랑과 연애 등의 요소도 이 소설의 흥미는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소설 속의 중요한 부분마다 만해 스님의 독특한 인생철학이 표현되고 있다. 현실적인 이념으로서 인간 자유와 사상의 문제, 여성의 인권 문제 등에서 종교인이라는 스님의 신분에서 묻어나는 개혁·계몽적 사회의식과 민족애, 불교철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만해 스님은 이 소설을 통해 3·1독립운동의 실패에서 오는 허탈감을 극복하고, 민족의 얼과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이은자 기자
ejlee@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