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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서 포착한 삶의 진실
비주얼의 시대여서인가. 요즘 서점가에는 유난히 사진이나 그림 위주의 책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 책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뒷모습>은 작고한 프랑스의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1923~1999)의 사진에 프랑스의 소설가 미셀 투르니에(78)가 글을 붙인 사진 에세이다.

사진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진 투르니에는 부바의 사진에서 뒷모습에 얽힌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54장의 사진에 곁들인 지극히 시적인 투르니에의 산문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뒷모습에 담긴 풍부한 표정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뒷모습이 수만가지 얼굴 표정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트루니에는 이렇게 말한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있는 한 사람이 내게 왔다가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었음을 얼마나 여러번 깨달았던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었으니!” 그래서 투르니에는 뒤쪽의 진실을 찾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채소밭을 걷는 사람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다. 화려한 난간과 조각상, 꽃장식이 둘러진 분수로 치장된 채소밭. 한때 아름다운 부인과 멋진 신사들이 거닐었을 화단에는 이제 양파와 배추와 감자가 촘촘히 심겨 있다. 그러니 사실 이 사진의 진정한 뒤 모습은 “이제 채소밭으로 변해버린 지체 높으신 분의 정원”이라고 투르니에는 적는다.

이밖에도 칠판에 쓰여진 곱센 문제 앞에서 긴장하는 아이의 어깨, 파리 패션쇼 무대 뒤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는 모델의 뒷모습, 얌전한 자채로 앞으로 보는 처녀에게 말을 건네는 청년의 설레임으로 가득한 등, 아이를 꼭 껴안고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젊은 어머니의 뒷모습, 따스한 햇볕이 내려앉는 창턱에 앉아 장미나무를 바라보는 고양이의 뒷모습, 신을 향해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의 등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애틋하고, 때로는 코믹한 사진과 글이 우리로 하여금 사색에 빠지게 한다.

이 책의 번역을 맡은 고려대 불문과 김화영 교수는 “프랑스의 중고서점에서 지난 93년 발간된 이 책을 발견하고 바로 번역에 돌입했다”며 “우리의 눈높이는 올려주는 미적 균형”에 매료됐다고 전한다.

뒤편의 진실을 포착해 살아 움직이는 삶의 앞모습을 기대하게 만드는 균형. 냉소적이지 않은 그 균형 감각이 잘 전해지는 책이다. (현대문학 刊, 2만원)

이은자 기자
ejlee@buddhapia.com
200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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