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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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한의 소설 <카르마>
윤회의 질곡에서 서성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소설 <카르마>의 주인공 ‘완’은 산골 오지 마을 민박집에서 가족이라는 굴레로 얽힌 자기 부모형제의 환생을 만난다. ‘몽당한 절굿공이 같은 팔’을 가진 민박집 주인 박씨와 ‘머저리 같은’ 박씨의 형 내외가 바로 그들이다.

박씨는 심한 관절염으로 땅을 기어 다니며 ‘축생 같은 생애를 살다간’ 어머니를, 박씨의 형은 광기를 주체하지 못한 채 요절한 둘째 형과 태생적 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가출한 이복 맏형의 모습을 닮아 있다.

이야기는 우연히 강원도 산골의 오지 마을을 지나던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는 어떤 이끌림에 의해 박씨의 민박집에 머물게 되고,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모진 목숨들’이 살고 있는 그 집에서 곁방살이를 하면서 전개된다.

민박집에서 주인공은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아니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자신의 가족사를 되돌아본다. 마치 오래된 활동사진을 보는 것처럼, 박씨 가족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는 과거 속의 그날들. 주인공이 애써 외면하고, 극복하려 했던 가족들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다. 가족사를 통해 윤회 사상을 관통하고 있는 이 소설은 윤회를 모티브로 실상과 허상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그것이 있기는 한지를 묻고 있다.

박씨의 형을 ‘거대한 짐승’으로 착각한 주인공은 그가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였음을 알고 <선가귀감>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우습구나 이 몸뚱이/아홉 개의 구멍에선 늘 더러운 물이 줄줄 흐르고/온갖 종기가 한 족각 엷은 가죽에 싸였구나/가죽 주머니엔 오물이 하나 가득/피고름조차 뭉쳐 있구나/우리 몸뚱이란/냄새나고 더럽고 하찮은 것/탐내고 아낄 게 아니로다’

인간이란, 아홉 개의 구멍에서 오물을 흘리는 존재라는 사실을 꿰뚫은 서산대사의 가르침은 주인공 ‘완’에게만 아니라 읽는 이에게로 전이된다. 주인공이 바라본 박씨의 형은 어쩌면 우리의 실상이며, 그것을 바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주인공과 결코 다를 바가 없다.

두 달여간 민박집에 머물던 주인공이 사라진 박씨 형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려 떠나려 할 때 박씨의 반응은 소설의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박씨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주인공에 대한 원망은 마치 주인공의 죽은 어머니와 형이 자신에게 퍼붙는 것으로 들린다. 어머니에게 형에게 폭력을 가하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자 했던 주인공에 대한 원망이 박씨의 입을 통해 적나라하게 터져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인공은 과거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자에겐 길을 장애도 많은 법이라며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릴 정도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자신의 과거와 화해를 시도한다. 그것은 바로 윤회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임자 없는 무덤이 어디 있으며, 전생 없는 현재가 어디 있겠소”라면서.

몇 달 후 가족과 함께 다시 찾아온 민박집에서 주인공은 또 다른 환생을 본다. 딸의 얼굴에서 죽은 어머니와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전생 같기도 하고 내세 같기도 한 윤회의 흔적들. 소설 속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졌던 것처럼, 과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전생인가, 현생인가, 내생 인가?<이룸 刊, 7천8백원>

이은자 기자
ejlee@buddhapia.com
200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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