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더더기 없는 언어의 결정. 그것이 시(詩)다. 버리고 버려서 마지막 까지 남은, 다른 어떤 말로도 대체 불가능한 언어의 직조물이 바로 시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틱낫한 스님이 40여년에 걸쳐 쓴 시 100여 편이 담긴 <부디 나를 참 이름으로 불러다오>(이현주 옮김, 두레)는 틱낫한 스님의 삶이 응축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현재 국내 서점가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틱낫한 스님은 누구인가. 평화운동가이자 난민공동체의 지도자인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 왕조의 행정관료 가문에서 태어나 16세에 출가했다. 이름의 첫 글자 ‘틱(Thich)’은 석가모니의 석(釋)에 해당하는 베트남어고, 법명인 ‘낫한(Nhat Hanh)’은 일행(一行)을 뜻한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파리평화협상에 파견된 불교평화대표단의 단장이기도 했던 스님은 공산주의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반공의 입장에 서지도 않았다. 반전주의자인 스님은 결국 남베트남 정부(사이공 정부)와 북베트남 정부 양쪽의 미움을 받고 베트남에서 추방당하는 몸이 되었다.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1968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수천 명에 달하는 베트남 난민을 구하기 위해 20만 달러를 모금해 800여 명의 보트 피플을 구조했으며, 프랑스 로테 가론 지역에 불교명상수련원 ‘플럼빌리지(자두마을)’를 세우고 봉사활동에 나섰다. 스님은 현재 미국 버몬트에 세운 ‘그린 마운틴 다르마 센터’와 플럼빌리지를 오가며 가르침을 펴고 있다.
시집은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역사의 장’으로 반전시(反戰詩)가 대부분이다. 자신이 경험한 베트남 전쟁과 인간과 자연의 황폐화, 망명 생활에서 느낀 쓰라림 등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시는 단순히 이런 고통스럽고 어두운 체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삶의 축복과 평화에 대한 간절한 소망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1965년 ‘사회봉사청년학교’에 속한 젊은이들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목숨을 잃었을 때에도 증오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경계했다.
‘저들이 산 같은 증오와 폭력으로/너를 쳐 쓰러뜨려도/구더기처럼 기어올라/네 몸을 갉아먹거나/팔다리를 자르고/내장을 꺼낸다 해도/아우야, 기억하거라/기억하거라/사람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권고 中)
2부 ‘궁극의 장(Ultimate dimension)’에는 ‘깨어있음’, ‘마음 충만함’ 등 스님의 깨달음이 여러 형태의 시로 표현되어 있다. 틱낫한 스님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요 ‘지금, 여기’에서 현재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미래에 극락에 태어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이 평화롭고 자비로우며 즐겁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나는 너를 버텨주고/너는 나를 버텨준다/너에게 평화를 주고자 나는 이 세상에 있고/나를 기쁘게 하고자 너는 이 세상에 있다’(너와 나 中)
시 마다 스님이 직접 쓴 시작 노트가 붙어 있어 어떤 상황에서 쓰여졌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시란 본시 입으로 음미하게끔 만들어진 문학 장르다. 틱낫한 스님의 시 또한 노래로 만들어져 세계 곳곳에서 불려졌다.
여수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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