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봉(1892-1982) 스님의 서간과 사진, 일기 등이 함께 묶인 단행본 「편지」가 스님의 20주기를 맞아 출간됐다(고요아침刊).
책에 실린 내용은 경봉 스님의 제자 명정(양산 통도사 극락선원장) 스님이 보관해온 두 가마 분량의 자료 중에서 골라 뽑은 것이다.
경봉 스님은 19살 때부터 70여년간 일기를 썼으며 당대 선사들과도 서신을 수시로 주고 받았다. 한국 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스님을 비롯해 한암, 효봉, 동산, 금오스님 등 역대 선지식이 모두 그와 편지로 왕래했다.
이들은 삶과 법을 꿰뚫는 선문답으로 깨달음의 본령을 설파했다. 예를 들어 경허 스님의 법제자 금봉 스님이 "나에게 물건이 있어 항상 움직이는 가운데 있으되거두어 얻을 수 없다 하니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알쏭달쏭하게 묻자 경봉 스님은 "나라고 하는 그 나를 참으로 아는가 모르는가 괴롭다. 야반삼경에 발바닥이나들여다보거라"고 대답했다.
효봉 스님은 이에 대해 "나에게 물건이 있다고 말하는 놈을 속히 잡아오면 너와더불어 상량하리라"고 했고, 동산 스님은 "놀란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도를 한 마디로 말하면 너에게 도를 일러주리라"고 일갈했다. 고승들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선의경지이다.
깨달음에 대해서도 각자 견해를 필설로 제시했다. 경봉 스님은 깨달음 이전에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효봉 스님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부터없애야 한다고 역설했다. 동산 스님은 아예 깨달음이란 헛된 꿈이라고 답했으며, 금오 스님은 선 질문 자체를 죽은 말로 여겼다.
일기에는 세속의 어머니에 관한 글도 실려 있다. 15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출가한 경봉 스님은 서정적 시편을 통해 모정에 대한 그리움을 쏟곤 했다. "누른 구름은들녘에 가득/흰 이슬은 강 위에 촘촘(1942.9.12 토요일. 큰 비가 오다)"에서 그 일단이 엿보인다.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수 백장의 사진 중에는 고종과 순종 등 구한말의 황실 사진이 앨범 형식으로 편집된 것도 있어 눈길을 끈다. 이번 책의 발간을위한 유품 정리와 번역에는 시인 정성욱씨도 참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