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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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봉스님 깨달음의 일기 80편
“새벽, 극락선방에서 대중에 설하고 삼소굴로 돌아오니 수좌가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를 붙들고서 밑도 끝도 없이 이것이 옳은 것이냐 저것이 옳은 것이냐를 묻기에 옳고 그른 것에 대해 따지지 말라 했더니 재차 물어 한 차례 때렸다. 수좌를 다시 알아야 한다고 따지기에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가라고 물었더니 머뭇거려 생각하기에 또 한 차례 때렸다”

근대 한국불교의 선지식 중 한 명인 경봉 스님(1892∼1982)의 입적 20주기를 앞두고 스님의 일기를 모은 <꽃은 져도 향기는 그대로일세>(명정ㆍ정성욱 엮음, 예문)이 나왔다.

1927년 12월 7일부터 1976년 4월 2일까지 50여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쓴 경봉 스님의 일기 중 일반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글 80여편을 골라 사진과 함께 묶었다. 일기는 주로 사건의 기록보다는 수행 과정과 근렷測?한국 불교를 이끌어온 대선사들과 주고받은 편지글이 주를 이루며, 여기에 명정 스님과 정성욱 씨가 해설을 달았다.

일기를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수행의 향기는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며 삶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또한 만해 한용운 스님과 향곡, 효봉 스님 등과 수행의 방법과 경지를 묻고 답하는 편지들은 문학적 가치를 넘어선다.

만해 스님에게 보낸 글에서는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슬픔을 읽을 수 있다.

“경성부 성북정 초가 한 채 화상께서 지은 심우장. 집 이름을 심우장이라 했듯이 소를 얻어 기르는 것이 분명한데 지금 화상의 집에는 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느 날 어디서 그 소를 잃어버렸습니까? 만약 본래 잃지 않았다면 지금 그 소는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자 만해 스님은 “털과 뿔이 생기지도 않았거니 어찌 얻고 잃었겠나. 목부가 일이 많아서 부질없이 심우장을 지었네”라고 답했다.

189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경봉 스님은 15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907년 통도사에서 성해 선사를 은사로 입산했다. 1925년부터 30년간 통도사 양로염불만일회 회장으로 일했으며, 1953년 통도사 극락호국선원 조실로 추대됐다.

82세부터 시작한 극락암에서의 정기법회는 90세가 되는 노령에도 시자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법좌에 올랐으며, 매 회마다 천여 명 이상의 대중들이 참여하였다. 1982년 7월 17일 91세의 스님은 당신의 입적을 알리 문도들을 모이게 했다. 이때 시자 명정 스님이 "스님의 모습이 어떠합니까"하고 묻자 "야반 삼경(夜半三更)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하신 후 열반에 들었다.

저서로는 법어집인 <법해(法海)>?속법해(續法海)>와 시조집인 <원광한화(圓光閒話)>, 유묵집인 <선문묵일점(禪門墨一點)>, 서간집인 <화중연화소식(火中蓮花消息)> 등이 있으며, 스님이 남긴 일기는 세권의 책으로 묶여 발간된 예정이다. 값 8천 8백원.

여수령 기자
snoopy@buddhapia.com

200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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