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처님 오신 날 조계사에는 특별한 등 하나가 걸렸다. 바로 카린 슈미트 씨가 건 ‘동물들을 위한 등’이 그것이다.
어려서부터 아시아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온 카린은 14년 전 한국에 정착해 서울 독일학교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취미는 전국의 조용한 산사를 찾아 그곳에 묵으며 사진을 찍는 것이다.
주말이면 자신이 키우는 토끼 졸리와 함께 조계사를 찾는 카린은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힘든 일들을 천천히 생각해볼 수 있다고 한다. ‘더불어 살고 더 크게 사랑하며 서로에게 베풀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 바로 한국의 절’이라는 카린. 벌써 10년째 조계사를 찾는 그는 작년부터 졸리를 비롯해 자신이 키웠던 동물들을 조계사의 ‘신도’로 만들었다. 초파일에 동물들의 이름을 적은 등을 밝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카린이 한국인들에게 실망한 순간도 많다. 한순간의 호기심에 쉽게 동물을 구입하고 또 실증나면 버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자주 찾는 분당의 공원에는 버려진 동물들이 가득하다.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카린은 아픈 동물들을 데려다 치료를 하고 새 집을 찾아주었다. 그가 분당의 한 공원에서 데려온 토끼 졸리는 마포에 있는 그의 오피스텔에서, 역시 토끼인 은털이는 그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다는 그는 “얼마만큼 오래 살았는가 하는 것보다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김현자 씨는 이런 카린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보자고 제안했다. 카린의 이야기가 생명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사랑해요>(인북스)는 김 씨가 카린의 이야기를 우리말로 정리하고 카린이 찍은 사진을 함께 담은 것이다.
채식주의자로 절에서의 공양시간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초파일이면 절을 찾아 보살들과 함께 연등을 만들기도 하는 카린은 이제 7월이면 스위스로 잠시 돌아간다. 함께 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연로하신 부모님 가까이서 모시기 위해서다.
“곧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동물들을 키우고 싶다”는 카린은 서울을 떠나면 모두에게 말한다. “아름다운 이 세상은 우리 인간들만의 소유가 아닙니다.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입니다. 우리, 조금만 더 사랑해요.”
여수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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