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 스님은 94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바쁘시다. 포교를 위한 전시회라면 수십장 씩 글씨를 써 주시고 역경 사업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 법문을 해 주시기 때문이다.
스님의 수행 일화를 담은 문집이 나왔다. 역경과 포교, 도제양성 등 스님이 평생에 걸쳐 힘쓴 불사에서 인연을 맺은 원로 스님들과 재가자들의 글을 후학들이 2년에 걸쳐 묶어 세수 94세 생일에 맞춰 낸 것이다.
백양사 방장 서옹 스님과 조계종 원로의원 진제 스님, 전 총무원장 고산 스님, 전국 비구니회 회장 광우 스님을 비롯해 동국대학교 송석구 총장과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 통일문제 연구소 백기완 소장 등 129명의 글이 실려 있다. 원로 스님들은 주로 스님과의 인연과 수행 일화를 소개하고, 재가자들은 가까이서 뵈었던 스님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석주 스님은 1909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23년 서울 선학원에서 남전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선학원에서 6년간의 행자생활을 했고 범어사 강원의 전과정을 마쳤다. 이후 선학원 이사장과 두 차례에 걸친 조계종 총무원장, 조계종 초대 포교원장 등을 역임했다. 또 중앙승가대학을 설립해 승가교육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동국역경원 이사장을 맡아 경전한글화에 앞장섰다.
불교 발전을 위해 여러 방면에서 힘쓴 석주 스님은 특히 어린이 포교와 역경 사업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스님은 법보원(法寶院)을 만들어 우리말 불서를 펴냈다. 동국역경원이 설립되자 법보원의 모든 판권을 역경원에 넘겨준 것은 물론 역경원 부원장 소임을 맡아 20년 동안 한 번도 결근을 하지 않았다. 스님의 어린이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다. 칠보사에 주석하실 때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대웅전 현판을 ‘큰법당’이라고 쓰셨으며, 칠보사소년소녀합창단을 만들어 찬불가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또한 책에는 승가대학 준공식 날 매서운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자리를 지키신 일과 2545년 봉축행사 때 동대문운동장에서 조계사까지의 제등행렬에 육환장을 짚고 끝까지 앞장서신 것에 대한 존경의 글은 물론, 학비 문제로 애태우다 스님께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끝내 지금은 교수가 된 이의 늦은 감사 편지도 실려 있다. 이런 석주 스님에 대해 직지사 조실 관응 스님은 “도심의 절에 살면서 평생을 검소하고 청정한 계율을 지키고 사신 안과 밖이 똑같은 분”이라고 평한다.
문집간행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송운(보문사 주지)스님은 발간사에서 “석주 스님의 일생을 본받아 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엮게 됐다”고 밝혔다.
스님이 일평생 가장 많이 쓴 ‘오유지족(吾唯知足)’이란 글귀에서 볼 수 있듯이 스님은 ‘자신에게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근면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또 그렇게 실천했다. 때문에 이 책에 실린 글을 읽다보면 도원(조계종 원로회의장) 스님의 말씀대로 “당신이 살아오신 생애 자체가 법문”임을 깨닫게 된다. 값2만5천원
여수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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