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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년전의 종교논쟁 듣는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라는 아픈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식민지배는 속성상 정치ㆍ경제적 침탈뿐만 아니라 민족성 말살도 함께 이루어진다. 특히 서구 제국주의에 있어서 그것은 기독교의 전파로 실행됐다.

지금으로부터 128년 전인 1873년, 스리랑카의 파아나두라라는 마을에서 1만명이 넘는 청중을 앞에 놓고 불교를 대표한 스님과 기독교를 대표한 두 명의 목사와 전도사가 각기 스리랑카에서의 자기 종교의 운명을 걸고 역사적인 논쟁이 행해졌다. <파아나두라 대논쟁>(오진 스님 옮김, 운주사)은 바로 그 논쟁의 기록이다.

당시 스리랑카의 시대적 배경은 네덜란드 식민지가 끝나고 영국의 지배(1796~1948)에 들어간 시기다. 지배자들은 스리랑카의 국교인 불교의 활동을 제한하고 기독교로 개종을 강요했다. 출생한 아이는 세례를 받지 않으면 주민으로서 등록할 수 없었고,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스님들의 탁발행을 금지하는 등 스리랑카 불교는 포교와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역사상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이 때 한 스님이 기독교에 공개 논쟁을 제안한다. 모호티왓테 구나난다(1823~1890) 스님이 바로 그 주인공.

결국 불교와 기독교 중 어느 종교가 더 타당하고 올바른가에 대해 대중들이 검증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기독교를 대표해서는 데이비드 데 실바 목사ㆍ시리만나 전도사가 나섰다.

논쟁을 위해 전용 건물까지 지은 양측은 △논쟁은 구술로 할 것 △한 사람의 대론시간은 1시간 △첫 번째 시간을 기독교 측에 부여하고, 그 시간은 불교의 허위성을 제시하기 위해 사용하고 다음 시간은 불교 측에서 기독교 측에 대해 답변한 다음 기독교에 대한 허위성을 대론치 않으면 안 된다 등 10개 항목의 협정서를 교환하고 모두 다섯 지역에서 교리의 우열을 가리는 논쟁을 시작한다.

이러한 방식의 5대 논쟁 가운데 파아나두라 마을에서 행해진 논쟁이 가장 치열했다. 이 책은 바로 그 파아나두라에서의 논쟁을 담고 있다.

파아나두라에서의 논쟁은 상대 종교에 대한 공격과 그에 대한 반론 그리고 자기 종교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주제는 영혼의 문제, 육체와 정신, 죽음, 교주의 전지 전능성, 교주의 지혜, 교리상의 허점, 수미산의 존재 여부, 경전에 대한 신뢰성 등 폭넓게 주어졌다. 또한 식민지 지배와 결탁해 선교하는 기독교와 불교를 신봉하는 스리랑카 민족과의 ‘격돌’이기도 했다.

결국 불교의 승리로 끝나지만 이 논쟁의 가장 큰 성과는 스리랑카가 지금까지 불교국가로 명맥을 잇게 하는 한편 남방상좌부 불교의 재생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역자 오진(일본 동경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강사) 스님은 “이 논쟁을 계기로 스리랑카 불교도들이 긍지를 회복하고, 이 논쟁을 직접 들은 당시 소년이었던 아나가리카 다르마파아라 씨는 인도에 건너가 불교 부흥운동에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값 8천5백원.

김중근 기자
gamja@buddhapia.com
200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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