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신라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진골 귀족체제가 무너지고 지방 세력이 새로 등장하는 전환기였다. 이에 따라 여러 측면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불교계도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선종의 등장이다. 당나라에서 선종을 공부한 선승들이 귀국해 산문을 개창한 것이 그 시작이다. 게다가 선승들은 지방뿐만 아니라 중앙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쳤다.
신간 <신라선종연구>(일조각)는 바로 9세기 선종계를 주도하였던 선승 가운데 한 사람인 낭혜무염(800~888) 선사와 그가 개창한 성주산문에 관한 연구서이다. 지은이는 서강대학교 박물관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조범환 씨. 그가 구산선문 가운데 성주산문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선종 불교계의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성주산문을 통해 신라 말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사상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성주산문의 개창자와 창건 배경, 산문의 경제력과 경영관계, 산문과 왕실과의 관계, 산문과 지방세력과의 관계 등을 고찰한 지은이는 낭혜 무염 선사가 성주산문을 개창하는 과정에서 지방보다는 중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고 개창 이후에도 왕실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는 지방 호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기존 학설과 대치되는 논리다. 또한 성주산문에서는 무역상들에게 교역의 장소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생활자기를 공급받았다고 말한다. 이는 다른 산문과는 다른 경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성주사가 지역에서 차지하고 있던 사회ㆍ경제적 위상이 높았다는 것을 그 전거로 하고 있다.
특히 지은이는 낭혜의 제자들이 교종 사찰과의 교류를 통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점, 낭혜의 선사상 가운데 교와 선이 다르지 않을 강조한 점 등을 탐구하면서 신라 하대 교선 융합의 첫 출발점이 낭혜 무염 선사라고 말한다.
이 책은 또 다른 특징은 특정 산문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 연구서라 점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성주산문에 관한 연구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신라 하대 선종 불교계 연구의 시작이다”며 “보다 더 정밀하고 통시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값 1만2천원.
김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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