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늘 우리 곁을 맴도는 화두들이다. 속도 지상주의로 치달으며 인간 소외를 부추기는 최근의 흐름에서는 특히 그렇다. 최근 종교계를 중심으로 이러한 의문을 서로 나누고 해법을 찾아 가는 수행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여름 휴가철 복잡한 피서지를 피해 사찰로 단기출가를 떠나려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신간 <나를 찾아 떠나는 17일간의 여행>(한겨레신문사)은 불교ㆍ기독교 등 종교를 망라한 17개의 수행 프로그램을 통해 진정한 ‘나’의 존재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경북 문경 정토수련원 ‘깨달음의 장’ 한 장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박은영입니다.” “박은영이라는 글씨가 당신입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 몸입니다.” “어렸을 때의 몸과 지금의 몸과 수십 년 후의 몸이 모두 다른데, 어느 것이 진짜 당신입니까.” “….” “당신은 누구입니까.” “마음입니다.” “어제의 마음은 어디로 갔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럼, 당신은 어디로 갔습니까.” “….” “박은영 씨.” “….” “박은영 씨.” “….”
이러한 집중적인 문답 속에서 참가자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향해 “정말 나는 누구일까”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이름도, 직위도, 종교도, 학력도 결국은 ‘내’가 아니라는 것은 조금씩 깨달아 가는 것이다. 이렇듯 ‘나를 찾는 여행’은 모든 것을 밖에서만 갈구하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자기를 성찰하는 마음 여행이다.
이 책에 소개된 수행처는 정토수련원의 ‘깨달음의 장’에서부터 인천 용화선원의 참선,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수행, 불교수행법인 동사섭, 천주교의 영신 수련, 티베트의 명상 수행, 노동과 영성이 어우러진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삶에 이르기까지 수행현장 17곳에서의 체험을 담고 있다.
이러한 마음 여행 방법은 종교나 종파 그리고 수행의 원리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참선이나 명상을 통해 깨달음에 다가가는 곳이 있는 가하면, 한바탕 춤판이나 죽음 묵상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기도 한다. ‘나’를 내세기 보다는, ‘우리’가 먼저인 삶을 실천하는 공동체의 모습으로 유지되기도 한다. 이러한 수행법의 공통적이 가르침은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한겨례신문사 문화부 조연현 기자. 그는 수행에 참가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변화를 바로 옆에서 전한다. 지은이가 취재자로서 수행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지은이는 17일간의 마음여행을 마치고 이렇게 말한다. 수행은 본래의 나로 건너기 위한 나룻배이다. 나룻배 자체에 집착해서 무슨 유익이 있을까. 문제는 수행법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다. 진정한 수행자는 남의 수행법을 시비하기에 앞서 바로 자신을 시비할 것이다. 독자들이 밖에 대한 시비를 떠나 비로소 내면을 성찰하기 시작했다면 더 이상 이 책도 짐이 될 뿐이라고. 값 8천원.
김중근 기자
gamja@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