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66) 시인은 30여 년 전부터 사찰을 찾기 시작했다. 속세를 떠난 그곳에서 시인은 사찰의 웅대한 부분이 아닌 아주 작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시심에 잠긴다.
<풀빛화두>(책만드는집)는 절을 찾는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쳐버릴, 어쩌면 하찮게 생각하는 것들을 시제로 하여 쓴 시집이다.
“어둠을 찢어 발기며/ 새소리가 산을 오른다/ 물소리 차오르듯/ 산새소리 찰찰 넘쳐/ 그 소리 해돋이 한 자락/ 대불전에 공양한다.”(‘새소리’ 전문)
석굴암의 일출을 보기 위해 토함산에 오른 시인은 이 세상에 태어나 배운 모든 지식들을 벗어 버리고 때묻지 않은 본래의 감각을 작동 시킨다. 그리하여 시인은 계곡 끝자락에서 들리는 새소리, 자연의 향기와 맛 그리고 동해의 일출을 시에 담는다.
“판각 앞에 말문 닫으면/ 켜로 앉은 칼끝소리/ 스무 해 새긴 각이/ 불음 담아 떠오른다/ 별빛이 쏟아지는 밤에/ 별을 헤다 잠든 밤에….”(‘팔만경판생각’ 전문)
수천년 동안 항상 그 자리에 묵묵히 있는 경판들이 뭔가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해인사의 외형에 눈을 빼앗긴 사람들은 이런 감상에 잠길 수 없다. 이상범 시인의 시들은 심안(心眼)으로 읽히는 시들이다. 값 5천5백원.
김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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