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10.1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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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불서흐름
떠들썩했던 시작이 민망할 정도로 밀레니엄의 첫해가 조용히 저물고 있다. 역시 중요한 건 10년 혹은 천년 단위의 시간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일상임을 확인하게 한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일상의 소중한 일이 되어야 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으리라. 올 한해 불자들은 무슨 책을 즐겨 보았을까.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책의 흐름을 통해 불교 대중의 지적 풍향과 수준을 짐작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2000년 불서시장을 이끈 베스트 불서를 짚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한해 불교 서점가를 뜨겁게 달궜던 책은 없었다. 하지만 스님들이 펴낸 책이 장기간 인기 상한의 위치를 누렸다는 것이 대표적 특징이다. 특별한 일도 아니다. 스님들의 수행과 그 내면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한 올 한해가 불황 속에서 시작된 만큼 많은 독자들이 어수선한 마음의 한 자락을 '스님의 말씀'에 의지해 그 해법을 찾거나,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불자들의 이러한 심리상태를 가장 잘 반영한 것이 <선방일기>(여시아문)다. 70년대 초반 겨울, 상원사 선방에서 동안거한 선객들의 일과를 담은 이 책은, 경제 한파 속에서 한 가닥의 희망을 갈망하는 불자들에게 소욕지족의 삶과 그 가치를 가슴 깊이 각인시켜 '재기의 의지를 담금질하는'구실을 하였다. 이 책은 불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즐겨 읽을 정도로 일반 출판시장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는 점도 흥미롭다. 한 라디오 방송사에서는 부처님 오신날 특집으로 이 책을 원작으로 방송하기도 했다.

2000년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적신 또 한 권의 책은 현각 스님의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열림원)와 원성 스님의 <풍경>(이레)을 꼽을 수 있다.

불자들은 왜 이 책은 손에 쥐었을까. 불자들은 깊이 있는 사유를 요구하는 심오한 불교학 대신 서정적인 이야기를 통해 '대리 만족'을 삼으려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그들은 수행의 현장에 있는 스님에 기대어 경쟁과 속도의 시대를 버티며, 참나에 대한 가치를 점검한 셈이다. 이러한 흐름은 <오두막 편지>(법정 지음, 이레), <집착을 버리면 행복이 보인다>(일타스님 지음, 불교시대사) 등 스님이 펴낸 책의 연장선상에서 봐야한다. 물론 이러한 책이 올 한해 불자들의 사랑을 받은 데에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면 불자들은 '쉽게 읽히는 책'만 선택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불자들은 신행과 수행의 사표로 불서를 선택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교과서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만큼 편집이 딱딱함에도 불구하고 올해 가장 많이 팔인 책(불서 전문서점 여시아문 집계)으로 선정된 <불교입문>(조계종 출판사)이 그러한 현상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로 삼을 만하다. 신행과 수행의 모든 것은 상세하게 요약한 이 책은, 가장 많은 독자는 불교교양대학생들이다. 하지만 많은 불자들이 이 책은 '신행 교과서'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것이 올해 불교출판 흐름의 가장 큰 변화이기도 하다. <불자의 마음가짐과 수행법>, <생활 속의 기도법>, <불교교리>, <지장신앙·지장기도법>, <부처님 말씀> 등의 꾸준한 반향도 같은 맥락이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 보인다>(문이당) 등 달라이 라마 관련 서적과 민족사의 작은 경전 시리즈 등 점차 작아지는 책과 선 관련 서적들이 꾸준하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는 점도 2000년 불교출판계의 작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좋은 글은 시대를 뛰어 넘는다. 잊혀졌다가도 다시 떠오르고 세월이 가도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은정희(서울교대) 교수의 '원효 연구 35년'을 담은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일지사), 임기중(동국대) 교수가 순수불교가사 원전 108편을 모아 주석한 <불교가사 원전연구>(동국대학교 출판부), 무산 스님의 다담선 뿌리 찾기 20년 산물인 <한국역대고승의 다시>(명상)를 비롯 박범훈 교수의 <한국불교음악사 연구>(장경각), <한국사찰의 주련과 편액>(대한불교진흥원) 등의 출간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 가운데 하나다.

올 한해의 불서의 큰 흐름을 살펴보면 대중들은 깊이 있는 사유를 방해하는 딱딱한 책보다는 깊이와 재미, 그리고 문학적 향취가 묻어 있는 '내 마음의 책'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1년 불교출판계는 이러한 현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출판사와 작가, 그리고 독자들은 모두 불서출판의 위기론 자체에서만 맴돌게 아니라 반성과 포용적 자세로 '불교출판 활성화'의 수위를 높여야 할 것이다.

김중근 기자
200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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