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이후 송광사, 칠불암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하던 한 수좌가 돌연 팔리 삼장을 우리말로 역해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인도로 떠난다. 각묵 스님이 바로 그 주인공.
“87년 여름 쌍계사 칠불암 운상선원에서 반 철 지나면서 외국에 나가야겠다는 망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큰 망상이라도 일주일이 지나면 없어지는데 그 생각이 떠나질 않더군요. 해제하고 도반인 함현 스님을 만났는데 ‘팔리경전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느냐. 선방에서 정진도 했으니 자네가 그 일을 하게’라는 말이 계기가 되었지요.”
부처님 당시의 언어로, 불교가 태동할 무렵의 사상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며, 수행의 주춧돌이라는 판단한 스님은 인도로 향했다. 그리고 인도유학 10년의 결실이 바로 <금강경 역해>(불광)다.
각묵 스님이 이 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금강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상(相)의 원어가 니밋따(nimittaㆍ모양)가 아니라 산냐(sannaㆍ인식)임을 알면서부터다. 산냐가 초기경전인 숫타-니파타 4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임을 알고 있었기에 이에 대한 스님의 궁금증을 더했다.
“<금강경>의 말씀을 공(空)이라는 거창한 명제로 설명하는 대승불교의 관점은 너무나 이데올로기적 해석입니다. <금강경>은 초기불교에서 부처님이 설하신 ‘산냐를 극복하라’는 말씀을 따르는 경입니다. 공관의 지혜를 설하기에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산냐를 뛰어넘는 참 지혜를 설하기에 반야바라밀인 것입니다.”
스님은, 불교가 불교이고 부처님이 부처님인 것은 바로 이 ‘산냐’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은 지금까지 수십 종이 출판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구마라즙 번역본을 저본으로 삼다 보니 <금강경>의 말씀이 구마라즙의 안목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산스크리트 원문 분석과 산스크리트 술어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토대로 출간된 책이 전무한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산스크리트 원문, 구마라즙 원문, 현장역본을 대역하고 상세한 주해로 편집한 <금강경 역해>의 가치가 예사로울 수 없다.
이 책은 전체 경의 분절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통용되어 온 양나라 소명 태자가 나누었다고 전해오는 32분절의 형태로 유지하면서 역경의 천재라고 불려지는 구마라집 역본과 중국역경사의 자존심이라 할 현장 역본을 산스크리트 원전과 비교해가면서 상세하게 대역해 놓아 원전이 이들에 의해서 어떻게 이해되었으며, 원전을 무시하고 한문본으로만 읽을 때 어떤 오류를 범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금강경>을 통해서 인생과 삼라만상의 실상을 밝히면서 ‘산냐를 극복하라’고 설하신 부처님 말씀의 핵심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값 1만8천원.
김중근 기자
gamja@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