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의 계보와 초기 선(禪)의 요체는 무엇인가.”
신간 <능가사자기>(박건주 역주, 운주사)는 구나발다라, 보리달마, 혜가, 승찬 선사 등 초기 선종(능가종) 선사들의 어록과 전기를 담고 있는 선서다. 어쩌면 초기선종의 역사나 계보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변천의 무늬는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선 수행의 뿌리를 알게 해 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1천 여 년 전 중국 돈황석굴에서 초기 선가의 실체를 알 수 있게 하는 사서들이 발견된다. <전법보기>, <능가사자기>, <역대법보기>, <유심론>, <수심요론>, <증심론>, <대승무생방편문> 등. 이 가운데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는 선종이 본래 <능가경>의 핵심을 바탕으로 수행하는 ‘능가종’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귀중한 책이다. 지은이는 신수의 선법을 배운 정각(683-750) 선사.
<능가경>의 선지(禪旨)에 의지하여 심인상전(心印相傳)한 초기 선종의 사자(師資ㆍ스승과 제자) 전승의 계보를 밝히고, 그 분들의 전기와 함께 어록을 수록하고 있다. 사실 이 전에는 초기 선종이 <능가경>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능가사자기>가 발견됨으로써 선법의 요체와 전법의 계통이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 책은 함께 발견된 다른 선종 사서에 비해 초기 선사들이 설한 선법의 요지를 가장 풍부하게 수록한 것으로 능가선법을 비롯해 후대에 정법을 제대로 전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다.
돈황에서 발견된 초기 선종의 자료를 가운데 <전법보기>는 <능가사자기>보다 저술 연대가 빠르다. 하지만 그 내용은 초기 선사들의 행적이나 일화를 간략히 적은 것이고 법문이나 어록 부분은 없다. 따라서 초조에서 7조까지 초기 선사들의 선법을 가장 상세하게 전하고 있는 것이 바로 <능가사자기>인 셈이다. 선의 역사상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구나발다라를 초조로 하여 그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점도 이 책의 특징이다.
초기 선종의 선법이 후대에 상당 부분 퇴색하고 변질되었으나 이러한 자료를 통해 본래의 선법(능가선)을 되찾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자료의 소개와 해설이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상당히 늦었다. 대중서로는 1990년 출간된 <초기선종사>(전2권, 양기봉 역주, 김영사) 이외는 거의 없을 정도다. 중국고대사를 연구하고 있는 박건주(전남대 강사) 씨가 내놓은 이 역주본은, 사료적 가치뿐만 아니라 번역에 있어서도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놓아 선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사람들에도 고통스럽지 않은 책읽기를 가능하게 한다.
이와 함께 이 책에는 <출삼장기집>과 <속고승전>에 실린 초기 선사들의 전기도 우리말로 옮겨 덧붙이고 있다. 값 1만원.
김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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