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과한 칭찬은 오히려 욕이 되네. 아직도 극락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나. 바로 자네가 극락이며 지옥이네. 바라보는 양쪽 눈의 무게가 다르다니 어서 안경을 끼게. 안경은 비싸 사지 못하니 마음의 안경을 사서 끼게."
한국 근대 불교의 선지식 중 한 명인 경봉 스님(1892∼1982)이 '극락은 어디입니까'라는 내용의 종묵 스님 편지를 받고 쓴 화답이다.
근대 한국불교 1백년사를 이끌어 온 역대 선사와 강백들이 선문답 형식으로 주고받은 한문 서한이 명정 스님(통도사 극락선원)에 의해 <산사에서 부치는 편지>(좋은날)로 나왔다. 이 책은 엮은이 명정 스님의 스승인 경봉 스님이 간직하고 있었던 라면상자 다섯 개가 넘는 고승 서한들 가운데 일부를 뽑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편지 하나 하나에 담긴 선문답, 그리고 진리를 깨우쳐 주는 촌철살인 같은 구절들은 읽는 이의 가슴을 광할한 대지로 향하게 해준다. 편지지 또한 재미있다. 죽순을 펼쳐 말린 것이 있는가 하면 나뭇껍질, 그리고 찢어진 베옷자락 쓴 것들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쓰여진 편지들은 대부분 해독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쥐똥이 묻고 색이 바랜 채로 전해오는 종이의 편지들은 고승들의 삶과 수행을 고스란히 전해 준다.
그 편지들의 주인공들은 경허, 만해, 용성, 한암, 탄허, 효봉, 청담, 성철, 일타 스님 등 당대의 대표적인 스님과 재가신도 등 119명에 이른다. 내용 또한 다채롭기 그지없다. 만해 스님의 옥중 편지, 용성 스님의 친필 서한, 을사보호조약 때 한일합방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글을 발표했던 장지연 씨의 편지, 성철 스님이 불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외국인 교수에게 보낸 편지 등 다양하다. 그 중에서 득도를 위해 끊임없이 만행을 떠나는 스님들의 마음이 담긴 편지 등 수행의 방법과 경지를 묻고 답하는 편지들은 문학적 가치를 훌쩍 뛰어 넘는다.
"생(生)과 사(死)가 다 부처님의 뜻인데, 아직도 무(無)자 화두 속에서 파묻혀 살아가십니까"라는 효봉 스님의 질문에 경봉 스님은 "한번 화두를 꺼내면 접을 수 없는 그대에게 어찌 답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아직도 생과 사의 화두 속에 파묻혀 있는가. 이젠 벗어나 시냇물에 발이나 담구어 보게"라고 답한다. 또한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선문답도 있다. "옛 사람이 '조사의 뜻과 경의 가르침이 같은가. 다른가'를 묻는데 이에 답하기를 '닭이 추우면 나무로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로 들어간다'하시니 무엇입니까"라는 후배의 질문에 경봉 스님은 "당나귀가 마르면 털이 덥수룩합니다"라고 답한다.
이러한 편지들은 구절 구절마다 하나의 화두이며 시다. 하지만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러한 선문답 속에서 가슴 뭉클하게 풍겨 나오는 고승들의 인간미다. 어린 자신을 절에 맡기고 간 병든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산을 내려가야겠다는 제자의 고민에 대해 경봉 스님은 "피안의 세계는 늘 그리움의 대상을 만들고 지우는 길"이라며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잘 갈무리해라"고 다독인다. 반면 출가를 결심했으나 세상과의 인연을 끊지 못하는 불자에게 "어서 돌아가서 어머님을 공양하거라"며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첨단 컴퓨터 전송망을 통한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보내는 이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는 편지를 받아본 지가 오래일 것이다. 이런 시대에 이른 새벽 감로수에 먹을 갈아 한 소식, 한 소식 툭툭 던지듯이 오가는 선문답을 풍경소리와 대웅전 뒤 대숲을 스치는 바람소리 등과 버무려 적은 고승들이 주고받은 편지 한 장이 마음을 맑히는 법등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값 9천원.
김중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