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백금남 씨가 장편 소설 <손가락 열두 마디>(전 2권, 자유문학사)를 펴냈다. 1985년 삼성문예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나온 백씨는 그동안 <탄트라>, <천상의 약속>, <출가> 등을 펴내며 불법을 통한 삶의 진리 탐구 등 불교의 핵심사상들을 소설로 형상화시켜 왔다. 그런 백씨가 이번에는 구도소설로 독자들을 찾았다.
이 소설은 '나'라는 1인칭으로 얘기를 이끌어 가는 한 선사의 수행기다. '나'는 아침부터 제자들을 불러 먹을 갈게 한다. 열반송을 쓰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는 열반송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이기에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도대체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누구냐, 누구냐 그렇게 질문하며 무엇을 얻었는가를 묻기만 한다.
이 소설은 수행의 삶을 마치고 갈 길이 얼마 남지 않는 주인공이 열반송을 쓰려는 대목으로 시작하는 구도소설이다. 4대에 걸쳐 41명의 가족이 모두 수행자가 된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14살 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원효스님의 말을 듣고 출가한다. 29살의 어느 날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출세, 명예, 행복 등을 버리기 위해 손가락 열두 마디를 불에 태운다. 그리고 사람 그림자가 없는 태백산 도솔암으로 떠나 6년 간 무문관 수행을 한다. 그 결과 타다 남은 조막손에서 생신사리가 나오는 이적을 본다. 하지만 '나'는 이를 거두지 않고 모두 울 밖으로 버린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허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원효, 보우, 경허, 만공 스님을 비롯해 성철스님 등의 가르침을 우러르며 삶의 해답을 구한다. "지금까지 고승들의 열반송을 수없이 접해왔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비합리적인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차 있었다는 말이다. … 무위자연의 상태, 그것이 무방(無方)의 경지이다. 나는 지금 열반송을 지으려 하지만 그 경지를 모르기에 이러고 있는 것이다."
열반송을 쓰기 위해 붓을 든 '나'는 속마음과는 달리 거짓으로 꾸민 수행자의 가식은 물론 열반송을 쓰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까지도 독자들 앞에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내가 지금까지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은 모든 마음의 작용이 다해버린 경지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경지에 들면 어둠과 밝음이 없는 것인지는 체험해 보지 않아 모르겠고, 그래서 뼈가 저릴 지경이다."
철저한 계행으로 한 평생을 수행한 '나'가 열반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되돌아보는 자신의 수행궤적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간 상념에만 머물고 있을 시간이 없음을 알게 된 주인공은 지금까지 기차가 달려오는 레일 위에 서 있었지만 화두를 잡고 있었기에 오늘에 이르렀음을 깨닫는다. 화두를 잡고 있으면 생의 길에 있고 화두를 놓으면 죽음의 길에 서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다짐한다. 지금까지의 '나'에 대해 진솔하게 쓰자며 열반송을 마친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는 주인공은 눈을 감는다.
몇 해 전 입적한 한 선사를 모티브로 소설화한 이 책에서 주인공의 법명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그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불교계의 선지식이다. 하지만 '집착을 버리면 행복이 보인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라는 집착에 빠지는 순간 이 소설을 읽는 것은 무소득이 되고 말 것이다. 값 각권 8천원.
김중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