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큰 스님’처럼 받들던 조국을 떠나 미국 세탁소에서 일하며 포교했던 숭산(崇山 ·74)스님, 그의 설법 한마디에 세속의 모든 유혹을 떨치고 이역만리로 출가한 벽안의 제자 현각(玄覺·37)스님.
모든 것을 버렸다는 점에서 닮은 두 스님의 아름다운 인연은 현각 스님이 쓴 『만행』이란 책으로 꽤 알려졌다.
『만행』에서 스승과의 인연,방황과 깨달음의 과정을 차분히 털어놓았던 현각스님이 이번에는 자신을 깨우쳐준 숭산스님의 가르침(법어)을 두 권의 책으로 묶었다.『선(禪)의 나침반』(열림원)이란 제목으로 다음주께 출간된다.
현각스님은 스승과의 첫 만남(1990년 5월 하버드 대학원 대강의실 강연)을 이렇게 기억했다. “너무 놀랐다.어릴 때부터 가졌던 진리에 대한 의문과 갈망이 확 풀리는 느낌, 이제야 진정한 스승을 만났다는 생각에 그날 밤 잠을 못 이뤘다.”
현각스님은 평생을 고민해온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시원하게 쏟아내는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4년간 노트로 정리했다.물론 영어,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식 영어로 된 설법이다. 스님의 노트는 지난 97년 미국에서 같은 제목(The Compass of Zen)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에 힘입어 한글 번역을 준비해오다 이번에 내놓은 것이다.
현각스님은 후기에서 몇가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숭산스님은 한국의 불교를 전세계에 알린 분으로 종종 ‘한국의 달마’라고 불린다. 영국·미국 철학자들은 그를 살아있는 부처라고도 한다. (중략)하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한국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한탄이다.
이같은 안타까움에서, 숭산스님의 가르침이 탁월함을 스님의 조국인 한국에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소망이다.
현각스님은 또 책에 대해 “매우 혁신적인 가르침이 담겼다”며 다른 불서와의 차별화를 강조했다.현각스님은 먼저 기존의 많은 법문, 불교서적을 비판했다.
“대개의 법문이 지나치게 한문에 의존하고, 고대 중국의 전통과 해석을 따르기에 동양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나치게 어렵다거나 일상의 문제와 동떨어져 있다’고 믿게 됐다.이것은 잘못이다”는 것이다.
숭산스님의 설법은 다르다. 우선 형식 면에서 설법을 옮겨 놓은 이야기 투다. 한자는 특별한 용어로만 사용하고, 중요한 개념은 모두 일상생활의 에피소드를 인용해 설명한다. 내용면에서 다른 점은 “특정 종교나 종파,자신만의 가르침과 방법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복잡한 설명을 나열하기 보다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 즉 ‘내가 누구인가’를 고민하며 수행해야할 필요성을 여러 각도에서 풀어준다.
이는 숭산스님이 서양인들의 합리적 사고에 맞춰 개발한 나름의 방식일 것이다.
현각스님은 “숭산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풀어 소개했기에 많은 미국인들을 깨우쳐줄 수 있었다”며 “그 가르침은 깨어나는 방법으로 인도하는 ‘나침반’과 같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서구인들을 감동시킨 설법은 한국인에게도 새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1.3.8 중앙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