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 내적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수행법을 고집한다면 현실도피자나 신비주의에 빠진 몽상가란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선을 한다는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경향이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선 수행 과정에서 우연하게 체험되는 신비로운 심적 상태를 궁극적인 깨달음이나 높은 수준의 정신상태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불교 철학자 변상섭 씨는 <선 철학인가, 신비주의인가>(컬처라인)를 통해 선을 설명하는 사람들이 교학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이 대중화의 바람을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선을 신비주의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즉 교학이 선의 정신이론이란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러한 문제점을 불교역사 속에서 찾는다. 선가에서 '교학을 버리고 선을 수행할 것(捨敎入禪)'을 주장함으로써 교학에 대한 연구가 소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교입선은 경전만 보면 끊임없이 일어나는 마음의 움직임을 끊고 해탈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지적한 것인데, 교학은 잘못됐고 선만이 옳다는 입장에서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선의 본질에 대한 오해와 수행방법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란 것이다. 글쓴이는 경전이나 논서들이 깨달음의 정신이론이라는 것을 하나씩 입증해 나간다.
이밖에도 이 책은 근래에 논란이 되고 있는 간화선이 최고의 수행법이자 현대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수행법임을 선사의 어록과 경전을 근거해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화두란 무엇인지, 화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비롯 요즘 간화선의 대안으로 호응을 얻고 있는 묵조선, 위빠사나 등의 선 수행의 단점이 무엇인지도 간화선과의 비교를 통해 밝히고 있다. 또한 서양 철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눈 여겨 볼만하다. 불교가 매우 현상학적인 자세라는 점과 칸트가 감성에서 직관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과연 이것이 옳은 주장인가를 밝혔으며, 하이데거의 철학에 있어서 존재와 불교의 법계에 대해 비교하고 있다. 글쓴이는 서양철학의 모든 학파의 공통 결점은 주체론이 없다고 주장한다. 값 1만2천원.
김중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