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노라> 마이다 슈이치.
모골이 송연해진다, 라는 말이 있다. 비슷한 정황에서 자주 쓰이는 소름끼친다, 라는 말이 덩어리로서의 육체성을 환기한다면 앞의 말은 터럭과 뼈가 환기하는 바늘끝 같은 정신의 각성에 밀접해 있다. 어떤 책을 읽을 때,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그 독서는 즐거운가 괴로운가. 일테면, “진리는 다만 적으로, 부정하는 자로 나타난다. 벗으로, 인정해주는 자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진리는 악마 같은 무엇이다. 만일 그것의 악마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진리의 한쪽 면만 보고 그것의 파괴적인 성격을 보지 못한다면, 당신은 진리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만날 때 나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또한 “무념무상의 선정에 들어 무(無)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보다 더 그릇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라는 일갈을 만날 때, 관습적 인식의 안이함 속에 있던 내 정신은 고통스럽게 깨어난다.
나를 괴로운 책읽기에 직면하게 하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노라(如是我聞)>는 저자인 일본의 불교 사상가 마이다 슈이치가 스승 아케가라수 하야 스님과의 만남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담고 있는 얇은 책이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몇 가지 이채로운 것은 이 책의 번역자가 이아무개라는 필명을 쓰는 목사님이라는 것과, 우리말 번역이 활자화되지 않고 필사체를 그대로 복사하여 제본되었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잡음이 묻어나는 엘피판을 그리워하듯이, 인쇄기술의 범람 속에서 옮겨 적은 이의 손끝 힘이 그대로 느껴지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여간만한 감흥이 아니다. 또한 갈수록 이기적으로 구획되는 종교간 아성을 무화시키며 오직 진리 앞에 `홀로 선 사람'―내적 자유를 찾는 구도자로서 조우한 저자와 역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종교가 꿈꿀 수 있는 아름다운 실루엣을 엮어낸다.
마이다는 이 책에서 선생과 학생의 만남을 통해 구현되는 엄정한 구도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이는 학문·예술·인간관계의 제 영역에서 `참됨'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모든 인간적 몸짓의 기본 자리이기도 하다. “무상의 진리가 배어든 진정한 스승은 참된 학생―완전한 학생이었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선생을 자처하지 않았다”라는 말은 얼마나 두려운가. 적당한 사회적 `네임 밸류'를 얻고 나면 그 `적당함' 속에서 자기 현시적 권위주의에 발목 잡혀 속물적 타협에 이르곤 하는 우리의 정신은 얼마나 유약한가. “사람을 의지처로 삼지 말아라. 오직 다르마(法)를 의지처로 삼아라”라는 붓다의 말은, 지연과 학연과 혈연의 그 모든 연고주의의 계보로부터 한발자국도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얼마나 아픈가.
때로 괴로운 책읽기가 필요하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어떤 두려움이 문득 내 영혼을 찔러오고, 나는 듣는다. 홀로 선 자의 길을 가라. 혼자서 가거라.
2001.3.4 한겨레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