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변할지라도 심성(心性)은 변하지 않는다." 고려불교의 극심한 부패상황에서도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태도는 확고했다. 당시 승가에 대해 환멸과 좌절감 그리고 수치심을 느끼고 있던 스님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참다운 자기 자신의 발견(깨달음)과 그것을 가꾸어(수행) 가는 것이었다. 그 의지는 속세를 떠난 첫 출가에 이어 두 번의 두문불출 정진과 이상적 출가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정혜결사운동을 단행했다는 점만 살펴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길희성(서강대 종교학과) 교수가 내놓은 <지눌의 선사상>(소나무)은 이러한 지눌의 삶과 선사상의 핵심을 간결하면서도 심도 있게 천착한다. 이 책은 우선 지눌의 선사상 조명에 앞서 역사적 배경과 자료를 토대로 한 지눌의 전기에 대해 탐구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눌 선의 성격과 구조에 대해 깊이 있게 조명한다.

선교대립 등 심각한 고려불교의 상황 속에서 등장한 지눌은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끌어안는 '선주 교종적 선교회통론'을 전개한다. 선은 부처님의 뜻(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입(말씀)이라는 지눌의 선교일치의 정신은 조선 중기 서산대사에 의해 그대로 수용되어 오늘날까지 한국불교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글쓴이는 "지눌은 지적 알음알이의 병통(知解病)에 대해 염려하고 화두를 참구해 깨달음에 이르는 간화선을 인정하지만, 무조건 간화선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지눌 선사의 선 사상에서 돋보이는 특징이다.

지눌의 선 사상이 지적인 전통을 갖고 있으며, 그 과정은 돈오와 점수 그리고 간화선이다. 즉 '단박에 깨달음에 이르는' 돈오와 '마음을 부지런히 닦아 더러움을 씻어내'는 점수, 그리고 '화두를 참구하여 큰 깨달음에 이르는' 간화선의 전통 안에서만 참다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눌 이전과 이후의 한국 선불교를 구분하는 중요한 성과라고 글쓴이는 강조한다.

또한 지눌은 자신의 이러한 사상적 성취를 정혜결사 운동을 통해 실천해 옮긴다. 수선사에서 벌인 이 운동은 스님이 바람이었던 이상적인 수행 공동체를 실현했을 뿐만 아니라 탄탄한 사상적 토대이기도 하다.

이 책이 눈길을 끄는 또 하나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제기된 성철 스님의 선사상을 지눌의 선사상과 비교하면서 비판을 가한 것이다. 성철 스님의 비판의 핵심이 지눌 사상의 일부분인 돈오점수론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성철스님이 중시하는 대혜 선사의 간화선 전통도 한국불교의 경우 지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눌에 대한 논문은 많았다. 하지만 지눌의 전 생애와 선사상을 체계적으로 고찰한 작업은 고 이종익 교수의 <고려 보조국사 연구>(프린트본, 1974)이외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 점 또한 이 책이 이룬 값진 성과다. 값 1만5천원.

김중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