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조계사에서 '금강삼매경' 강의를 듣고, 한평생을 원효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은정희 교수(61·서울교대 도덕교육과)가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일지사) 역주본을 9년의 산고 끝에 내놓았다. 이 책은 지난 91년 출간돼 '해방 이후 최고의 번역서'라는 평가를 받으며 불교계의 큰 반향을 일으켰던 <대승기신론소·별기> 못지 않은 노작이다. 이 두 권과 함께 내년에 출간할 계획으로 주석 작업을 하고 있는 '이장의(二障義)'가 나오면 원효의 주요 저작에 대한 은 교수의 역주는 마무리되는 셈이다.
"법대를 졸업 후 8년 동안 집안을 도울 때 조계사와 천중사에서 이종익·이기영 박사, 법정·광덕 스님 등의 불교학 강좌를 들었습니다. 이때 이기영 박사의 '금강삼매경' 강의를 듣고 원효를 전공하기로 다짐했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동국대는 갈 수 없어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은 교수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된 동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탐정소설을 읽다가 '죽음'이란 문제를 놓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어요. 그리고 내린 결론이 '죽음에 임해도 후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는 것이었어요. 이때부터 내 목표가 부처가 되어보자는 것이었지요." 10살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으니, 부모님의 권유에 의해 들어간 법학도로서의 학부생활이 순탄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전공을 바꿔 불교학도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결혼조차도 부질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독립된 길을 가야겠다'고 시작한 원효 연구는 쉽지만은 않았다. 민족문화추진회와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문을 수학해 번역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불교용어 이해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는 불교용어가 암호(?)였다고 털어놓는다. 그렇다고 불교학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여러 사람과 반복해 공부하는 윤독이였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윤독하면 모르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기존의 원효 저서들의 문제점인 오역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펴낸 두 권의 책 모두 5∼6번 윤독을 마친 결과물입니다."
오랜 불교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20여 권의 원효 저서들이 학문적으로 축적되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금도 은 교수가 '대승기신론'과 '금강삼매경론'의 역주를 마쳤지만 동료학자나 제자들과 함께 '구사론(具舍論)' '조론(肇論)' 등의 윤독하고 성철선사상연구원 등 불교학회를 찾아다니며 공부하는 것도 그 이유다.
은 교수의 역주본에서 돋보이는 점은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정리한 도해다. <대승기신론소·별기>의 도해가 그랬듯이 <금강삼매경론>의 도해 역시 원효 사상으로 다가가는 일은 한결 수월하게 해준다. "처음 '금강삼매경론'을 대할 때 솔직히 한 구절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원효의 저작을 읽는 사람들의 고충을 알기 때문에 얽히고 설킨 '금강삼매경론'의 구조를 도해로 만들었습니다."
<금강삼매경론>은 '금강삼매경'에 해석을 붙인 주석서.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주석서 차원을 뛰어넘어 원효 스님의 사상을 함축하고 있다고 은 교수는 설명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원효 스님이 늘 강조한 '자리와 이타'이다. 본문에는 없지만 열반에 머물지 않고 중생과 함께 한다는 부주열반(不住涅槃)에서 그 사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은 교수는 이 책에서 다른 역자와의 번역상 차이를 밝히는 세밀한 주석을 달아 신뢰도를 높였다.
불교학자를 천직으로 택한 은 교수이지만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깨달음인 이상 수행을 도외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늘 수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번역하는 일에 매달리다보니 따로 수행(참선)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생활 속에서 매순간 조용동시(照用同時·본성을 비춤과 본성의 작용을 동시에 한다)하며 살려고 노력합니다."
조용동시, 즉 수행(참선)과 공부(번역)는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번역에 매달리다 보면 따로 수행할 시간은 없지만 ""생활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아 나를 비춰보는 것이 수행의 본래 목적이 아니겠느냐 ""고 은 교수는 되묻는다.
은 교수는 원효의 저술을 모두 번역한 뒤 원측·지눌 스님 등의 한국불교사상사나 한국고승의 유식학을 시대별로 정리해 보겠다는 또 다른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값 2만5천원.
김중근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