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노바 바베(1895∼1982). 카스트 제도가 엄격했던 시절, 그는 인도 최고의 계급인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 브라만을 상징하는 시카(긴 머리 타래)를 자르고 노동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시작된 '비폭력저항운동'(사티야그라하)과 '토지헌납운동'(부단). 20여 년 동안 인도 전역을 걸어다니며 지주들을 설득, 스코틀랜드만한 땅을 헌납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기적적인 성취에 도취되지도 안주하지도 않았다. 천민에서 총리에 이르기까지 그를 지도자로 떠받들자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내면 수행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실천문학사가 '역사속인물찾기' 시리즈의 열두 번째로 펴낸 <비노바 바베>(칼린디 지음, 김문호 옮김)의 주인공 비노바 바베는 우리에겐 다소 낯설지만 간디와 함께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로 꼽히는 사람이다. 이 책은 바베가 생전에 들려준 경험담을 토대로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것이다.
바베는 흔들림 없는 확고한 신념으로 간디의 사상을 평생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책은 바베가 영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수행자에 그치지 않고, 그의 이상을 현실에서 몸소 구현하려 했던 실천 의지의 소유자임을 강조한다.
바베는 브라만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안락이 보장된 그 길을 벗어 던졌다. 10살 때부터 붓다를 존경해온 그는 21살 때, 학교와 대학들은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 하인들을 훈련시키는 커다란 공장에 불과하다며 대학을 중퇴했다. 사회에서 받은 졸업장과 자격증 등을 불태우고 영원한 진리를 찾아 집을 떠났다. 일종의 출가인 셈이다. 고행자, 성자들과 토론하며 그들이 현실과 단절돼 있음을 느끼게 된다. 진리는 세상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법. 그 구도의 길에서 간디를 만나게 된다.
그는 간디의 아쉬람(공동체 마을)에서 '정치적 자유와 정신적인 발전을 동일시하고 동시적인 목표로 삼는 일'이 가능함을 확인했다. 또 '용기가 없으면 비폭력도 없다. 비폭력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내적인 비폭력이며, 그 내적인 비폭력은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때부터 바베는 '신을 찾고 사람들을 섬기는 일, 특히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바치기로 하고 무소유의 삶을 살 것을 서약했다. 그리고 육체 노동을 통해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겼다. 똥 치우는 일, 옷감 짜는 일, 농사 짓는 일 등 비천한 사람들의 몫이었던 일을 직접 하며 그들과 평생을 함께했다. 그에게 물레질은 바로 '진리'를 섬기는 일이었다.
바베는 사회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떠맡았다. 내면적 성찰 역시 사회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갈등과 그 뿌리를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1951년부터 시작된 토지헌납운동으로 구체화된다. "만일 당신에게 아들 다섯이 있다면, 가난한 자들의 대표자를 여섯 째 아들로 생각하고 당신 땅의 육 분의 일만 나에게 주시오. 땅이 없는 사람들과 같이 나눌 수 있도록 말이오."
토지헌납운동은 '자연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는 무소유 사상에 대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바베가 진정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자비의 이념이다. "사랑과 사상만큼 강한 힘을 가진 것은 없다. 조직도 정부도, 무슨 무슨 주의도, 경전도 무기도 사랑도 사랑과 사상을 당할 수는 없다." 그는 이런 사랑과 사상이 진정한 힘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믿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혁명과 명상의 삶을 조화롭게 살다간 바베는 간디와 함께 비폭력저항운동을 전개한 주인공이면서도 늘 권력의 바깥에 있었다.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고 항상 생활과 노동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간디와 만나 사회개혁에 뛰어든 지 50년 만인 1966년 바베는 외적인 활동을 줄이고 내면적인 수행의 길로 들어섰다. 87살에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닫자 일체의 음식을 거부하고 단식 80일만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의 이야기를 이끄는 화자는 '나'이다. 하지만 자서전은 아니다. 생전에 그와 절친했던 칼린디가 그의 회상을 정리한 책이다. 때문에 독자는 '조각그림 맞추기' 놀이를 할 때처럼 단편적인 일화로 빠질 위험이 있다. 그러나 조각그림을 온전히 맞추었을 때는 '마하트마'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는,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영혼'을 만나게 된다. 값 1만2천원.
권형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