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삭발한 머리, 카우보이 부츠에 청바지와 가죽 재킷 차림으로 실리콘밸리를 누비는 유명 창업 컨설턴트 랜디 코미사가 미얀마로 여행을 떠났다. 오토바이로 수많은 사원과 정글로 둘러쌓인 미얀마를 여행하던 중 코미사는 자신을 어떤 사원까지 태워달라는 한 스님을 만난다.
하루종일 먼지나는 길 150Km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을때 스님은 다시 자신을 원래 그 자리로 데려다 달라고 요구한다. 코미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처구니없어하는 코미사에게 스님은 화두를 던진다.
"계란을 1m 높이에서 떨어뜨리되 깨뜨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지요."
'장면 둘'.
벼락부자의 전설과 어마어마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벤처 창업자들로 가득한 실리콘밸리. 그곳에서 어느날 자신감에 넘치는 한 청년이 코미사를 찾아온다. 청년은 '장례식(Funeral).COM'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장례용품을 파는 사업을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코미사는 장례업계의 아마존을 꿈꾸는 청년의 계획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매일경제신문 '세계의 베스트셀러'코너에 소개되어 국내독자들에게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승려와 수수께끼'가 바다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다. 랜디 코미사가 쓴 이 책은 21세기 벤처자본주의와 참선의 화두를 기막히게 조화시킨 책이다. 두 개의 장면은 전혀 다른 이야기 같지만 뛰어난 연관성을 지니고 책을 이끌어 간다.
다시 '장면 하나'로 돌아가자. 스님이 던진 화두의 답은 간단하다. 계란을 1m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된다. 그러면 어쨌든 1m 지점을 통과할 때 계란은 깨지지 않는다. 이것은 시작과 초심(初心)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숙제는 분명히 1m 높이에서 떨어뜨렸을 때 안 깨어지면 되는 것이었는데 숙제를 푸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조건 깨어지지 않는 계란을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코미사는 깨달음을 얻는다. 어차피 코미사는 여행을 간 것이었다. 여행을 가기전 그의 첫번째 목적은 이 목적지와 저 목적지를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 기계처럼 움직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도시를 떠나 낯선 풍경 속에서 새로운 것을 보면서 머리를 식히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느새 목적지만 남게 된 것이었다.
다시 원래 자리로 데려다 달라는 스님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오면서 코미사르는 자신이 은둔의 나라 미얀마를 찾은 이유를 다시금 깨달았다. 다름 아닌 여행을 온 것이었다. 스님을 태우고 돌아오는 길은 아름다웠다. 가지각색의 색으로 빛는 황혼녘의 사원들, 저녁 노을에 물든 야와디 강은 눈이 부실만큼 매혹적이었다. 그는 스님을 태우고 아무 생각없이 목적지로만 달려온 것이 아니라 정말 여행을 한 것이었다.
'장면 둘'로 돌아가보자. 두개의 장면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사업계획서를 들고 돈 벌 꿈에 젖어 있는 청년에게 코미사는 맨 처음 무엇때문에 사업을 구상하게 됐는지를 물었다.
듣고보니 청년의 처음 사업계획은 순수했다.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조문객들이 샌프란시스코나 시애틀 등 먼 곳에서 오느라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인터넷으로도 조의를 표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겠다는 것이 청년의 처음 생각이었다. 그것이 변질되어 장례용품을 파는 사이트로 전락한 것이었다.
코미사는 단순한 장례용품 사이트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권한다. 원래의 의도대로 인터넷을 통해 조문을 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고 그것이 하나의 커뮤니티로 성숙되면 자연이 장례용품을 파는 것이 사업의 순서라고 충고한다.
영혼이 담긴 비즈니스서인 이 책은 벤처의 급성장과 몰락을 지켜봐야 했던 우리에게 왜 대부분의 벤처가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명저다. 순수했던 초심과 과정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자세가 곧 성공의 열쇠인 셈이다.(02)322-357
2001.2.9 매일경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