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일러둘 점이 있다. 책의 내용에 한국 독자들이 민족주의적 감정을 개입하지 말자는 제언이다.
저자가 일본인이고, 그가 어떤 인연으로 경주 남산 불교미술의 미술사적 위대성을 예찬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양국 문화의 우열비교는 아니라는 점이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한일 동시대인 사이의 공감이 중요할 뿐이다.
"나는 한국, 특히 경주 남산의 존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1977년 이래 남산의 선각(線刻)마애불을 관찰하면서 나는 이 선의 우아함과 정교함을 보고 그것이 신라인의 조각기술이 결실을 맺었다고 판단하면서 어떤 숭고한 계시와 친근감에 사로잡혔다."
화가인 히라노 쿄코(80)씨는 여러 마애불 중 이 선각 마애불에 껌뻑 죽는다.
이렇게 완성도가 뛰어난 마애불을 본 적이 없고, 남산 석불 중 단연 압권이라는 예찬을 책 내내 펼친다. 이 예찬은 국내 미술사가들도 공감하고 있는 대목이다. 우리 관심은 그가 남산과 맺은 인연에 쏠린다.
그는 중년들어 죽음의 기로에서 마침 불교에 눈을 뜬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한 한국인의 소개로 경주 남산을 소개받은 것이 1970년대 초반의 일. 당시라면 경주 사람들조차 '신라인이 산속에 건설한 위대한 불국토(佛國土)' 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있던 시절이다.
저자는 이후 셀 수 없을 만큼 경주를 드나들며 '한국에서 찾은 영원' 에 경의를 표하고, 이를 다양한 각도로 자신의 화폭에 담아왔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아팠던 몸도 치유됐다. 책은 이 과정에 대한 기록. 썩 효율적인 편집은 아니지만 히라노씨 그림들도 칼러 도판으로 소개돼 있다.
2000.10.12 중앙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