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철한 수행과 깨달음으로 꺼져 가는 선(禪)의 등불을 밝히고, 비승비속의 모습으로 북방고원에서 행각하다 입적한 경허(1846∼1912) 스님의 존재는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근대한국불교사의 큰 화두로 남아 있다.
이러한 경허 스님의 발자취와 선의 세계를 조명한 경허 평전 <삼수갑산으로 떠난 부처>(민족사)가 출간됐다. 이 책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경허의 신화와 진실에 치밀하게 접근하고 있다. <임제록> 등 여러 선서를 번역하면서 확고한 선의 세계를 구축한 글쓴이 일지 스님은, '경허 선'을 큰 축으로 경허 스님이 걸었던 학문과 구도의 삶 그리고 깨침의 세계까지 탐구한다.
글쓴이는 들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야심찬 집필의 변을 밝힌다. "경허 스님은 근대 한국불교사의 도화선에 불을 당긴 프로메테우스다. 이제 우리는 왜 그가 스스로 이단자라는 운명을 감수하고 저 북방고원의 방랑자로서 쓸쓸히 사라져 갈 수밖에 없었는가를 변호하고자 한다."
구한말 조선의 피폐된 한국불교의 선 수행과 정신을 되살려내고 선불교의 근대적 기원을 이룩한 경허 스님을 우리의 기억 속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보는 평전류들과는 달리 기존의 자료를 나열하는 것에서 성큼 나아가 밀도있는 분석을 가하며 경허 스님의 선 세계를 오늘에 되살려내고 있다.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경허 읽기'는 소문으로 전해져 오던 경허 스님의 생애와 선의 깨달음을 사실적으로 복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주는 감동은 소설이 주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20대의 뛰어난 학승으로 이름을 떨친 경허 스님이 환속한 스승 계허 스님을 만나기 위해 여행 중에 천안 근처에서 콜레라로 죽은 사람들을 보고 문자 속에 진리가 있지 않음을 깨닫고 모든 것을 버리는 모습, 필사적인 수행을 통해 선승으로 거듭나는 과정, 선 불교를 중흥시켜 많은 제자를 길러낸 후 홀연히 저잣거리로 들어가 중생 교화에 전념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적고 있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이 책은 경허 스님의 여러 출생설에 대해 논한 '고해의 연대기'를 비롯 경허 스님의 일대기를 연대순으로 따라간다. 경허 스님에 관한 자료와 사진 그리고 스님이 머물렀던 사찰과 선원을 답사하고 쓴 취재수첩인 셈이다. 경허 시대에 대표적 재가수행자 박태평 거사, 경허의 선을 사숙하고 그의 유품을 보관하던 일본인 중촌건태랑이 쓴 편지, 월초화상의 깊은 교류에 얽힌 일화 등 자잘한 기록들도 풍성하다. 이 책은 경허의 선을 말하고 있지만 그 핵심은 경허의 마음이다. 글쓴이가 이 평전을 쓰기 위해 인간 경허, 시인 경허, 선승 경허로 나눠 '경허, 그는 누구인가'를 탐구한 것도 그 이유다.
표면적인 사실이나 소문 등에 대한 시비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 말미암아 내면의 진실을 읽어내지 못하고 명분론으로 만족하는 경허 연구자들에게 있어 이 책은, 반성적인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값 8천5백원.
김중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