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아우르는 정신적 스승으로서 빛나는(?)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티베트의 지도자 14대 달라이 라마는 "우리는 지금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세계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 지구의 희망을 말한다>(롱셀러, 오정숙 옮김)는 교리나 수행 중심의 법문집도, 달라이 라마의 개인사나 종교적 관점을 분석한 연구서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달라이 라마의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은 대담집이다. 대담자는 영화 <양철북>의 시나리오를 쓴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쟝 끌로드 까리에르.
달라이 라마가 꼽은 인류의 큰 문제는 '인구 증가'다. 이에 대해 달라이 라마의 입장은 '비극'이라 할 정도로 단호하다."한 발자국 떨어져 전체를 조망해 보면, 이 지구상에는 인구가 너무 많고 내일이면 인구 과잉이 더 심각해지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윤리의 문제도, 우리 정신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문제도 아니다.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죠…."
그는 낙태를 반대하지만 산아 제한은 널리 알려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이 순간 지구상에 빽빽이 들어서 있는 50억의 귀한 생명을 보호하려면, 수적 증가를 하루빨리 막아야만 한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는 그는 생명의 존재를 미리 막는 산아 제한은 불행한 일이지만, 이제는 불교가 이런 장벽을 깨뜨릴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새 생명 하나가 모든 삶을 위협한다"고 말할 정도로 달라이 라마의 입장은 현실적이다. 심지어 '경전도 세상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바꾸어야 한다', '여성이라도 달라이 라마가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는 등 유연하고 개방적인 입장을 보인다. 특히 경전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성스럽고 존경할 만한 것이긴 하지만, 삼라만상이 그러하듯 경전 역시 상대적이고 무상할 따름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 가는 이 세상에서 죽어라 경전 말씀만 지키려고 한다면 제정신이 아니지요. 틀린 점이 밝혀지면 경전도 바꾸어야 합니다"며 항상 열린 마음으로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꼭 해야 할 일은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불교적으로 금지해온 것들이 우리에게 해가 된다면, 가장 먼저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류의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하는 작업에는 오랜 시간과 지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인구 폭발과 생태 등 전 지구적 생명이 걸려 있는 생존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동서양의 모든 지도자, 과학자, 교육가들이 총동원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인류의 큰 흐름에 대해서 그는 낙관론을 편다. '하나로서의 인류'라는 개념이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것이다. 유럽통합처럼 국경의 의미가 약해지고, 앙숙이었던 프랑스 사람과 독일 사람들 사이의 싸움이 사라진 점, 국적·문화·언어가 다른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결혼이 늘고 있는 점, 그리고 점차 핵무기의 위협으로부터 빠져나오고 있는 점등을 낙관론의 대표적 이유로 들었다.
이처럼 이 책은 막연히 티베트 불교의 수장쯤으로 여겨지던 것과는 달리, 달라이 라마의 순수한 생각을 간접 체험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덧붙여, 아직 이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꼭 귀띔해 주고싶은 것은 이 책이 지닌 묘미의 상당 부분이 대담자의 솜씨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적절한 질문과 다양한 예시, 그리고 독백은 독자들을 달라이 라마의 생각 속으로 보다 가깝게 안내해 준다. 값 8천8백원.
김중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