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1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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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FA 개정 뜨거운 불심
죽은 이의 영혼은 반딧불이 된다고 한다. 캄캄한 밤 외딴 길을 홀로 걷는 이에게 힘을 보태주는 반딧불. 환경오염 때문에 점차 우리곁에서 사라져가는 반딧불.

그래서였을까? 불평등한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을 위해 어렵게 싸우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주기 위해, 국가우월주위와 생명차별의식이 존재하는 남한 사회에서 더 이상 살수 없어서, 미선이 효순이는 반딧불이 된 것일까?

12월 7일 광화문에는 미군 궤도차에 깔려 죽은 미선이 효순이의 영혼과 하나되기 위해 조계사 청년회를 비롯 1만여 반딧불이 모였다. 죽은 사람은 있지만 죽인 사람은 없는 사건. 피해자는 신발 한짝 남겨 놓은 채 형체도 없이 뭉개져 한 줌 재로 사라졌지만, 가해자는 무죄 평결을 선고받고 본국으로 도망간 사건.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울고 있었다. ‘아리랑’을 부르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억울한 죽음에 대해, 민족이 처한 현실에 대해 울고 있었다. 울음은 조계사에서도 있었다.

광화문 촛불시위에 앞서 미선이 효순이 부모님이 12월 7일 조계사 법당을 찾았다. 조계사 청년회(회장 정우식)가 개최한 ‘효순ㆍ미선 극락왕생 발원 및 SOFA 개정 촉구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부모님들은 위패 앞에 헌향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법회 도중 청년회 회원들이 108배를 할 때도 눈물을 흘렸다. 법회가 끝나자 눈물을 닦고 회원들과 함께 조계사에서 광화문까지 촛불행진을 벌였다.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이 땅에 다시는 이러한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걷다 광화문에서 시민들과 하나가 됐다.

12월 9일 광화문 열린마당. 칼날같은 바람이 거리를 휘몰아친다. 진관스님(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 수경스님(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등 10여명의 스님들이 ‘미군 참회와 불평등한 SOFA 개정을 위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비닐 천막 하나 없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모여 앉아 노천 참선에 들고 있었다.

12월 11일에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사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5분이 단식 농성장에 찾아왔다. 할머니들은 당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벌인 뒤 농성장을 찾아 이불과 성금 등을 전달했다. 단식 농성은 14일까지 진행됐다.

12월 10일 오전 부산 미룡사(주지 정각) 대웅전에서는 ‘미선ㆍ효순 극락왕생 7일 천도기도 및 SOFA 개정 촉구 대법회’ 입재식이 봉행됐다.

같은 날 오후 10시 30분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 앞. 체감 기온 영하 17도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목탁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군 참회’와 ‘SOFA 개정'이라 쓴 연등을 앞세운 조계사 청년회 회원들이 한국통신 사옥 앞에서 미대사관을 바라보며 3000배 정진에 들어갔다. 정우식 회장을 비롯, 송창엽, 김한태, 오경석 회원들은 2시간씩 릴레이로 11일 오전 5시 30분까지 정진했다.

12월 11일과 12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각 단체 대표와 불교계 중진스님들로 구성된 ‘미군참회와 소파개정을 위한 108배 릴레이 정진이 봉행됐다.

혜조스님(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인권위원장), 장적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등 10여명이 목탁을 치며 쉼없이 정진했다.

12월 12일 오후 12시 불교단체 회원 100여명이 광화문 열린마당에 모여들었다. 단식농성장 뒤에서 죽비소리에 맞춰 108배를 실시했다. 108배를 하며 자신들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분노와 증오, 분별심에 대해 참회했다. 또 여중생을 압살한 미군들과 세계 각국에서 인권을 유린하고 있는 미국이 진정으로 참회하길 빌고 또 빌었다.

12월 13일 광화문 열린공원에서는 ‘미군속죄와 SOFA 개정을 위한 종교인 생명평화선언대회’가 개최됐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단체 등 50여 종교단체가 참가한 행사는 신앙은 달라도 미군속죄와 SOFA 개정이라는 공통분모를 위해 종교인들이 광화문에서 대한문까지 침묵행진을 벌였다.

12월 14일 부산종교인대화아카데미(공동대표 정여)는 부산 만덕성당에서 불교합창단, 기독교합창단, 천주교합창단, 스님, 수녀, 정녀들로 구성된 삼소회 합창단 등이 참여한 가운데 ‘생명존중과 평화정착을 위한 기도회 및 음악회’가 열렸다.

성당에서 불자들이 노래를 불러도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전혀 어색함이나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불교계의 이런 움직임은 12월 4일 서울 조계사와 경산 안흥사에서 열린 추모법회를 비롯하여 5일 평화통일불교협회 대구경북본부의 3보 1배 정진 등 전국에서 일어났다.

불교 이야기 중 가리왕의 전설이 있다. 도망치던 비둘기를 숨겨준 가리왕에게 독수리가 비둘기를 내달라고 요구하자 가리왕은 자신의 살을 베어 비둘기 무게만큼 주기로 제안한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살점을 베어 달아도 비둘기 무게 만큼 나가지 않았다. 마침내 가리왕 자신이 저울에 올라서자 비둘기 무게만큼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 대구, 부산에서 단식 농성, 3보 1배, 108배, 3000배, 천도재, 음악회를 개최한 한 반딧불이들. 반딧불이들은 자신의 살점을 베어가며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다고 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불평등한 SOFA를 개정하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천미희, 박원구, 남동우 기자
mhcheon@buddhapia.com
200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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