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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녀 할머니(76ㆍ진관외동)의 블루스는 끝없이 이어진다. 음악도 없고 조명도 없는, 3평 짜리 쪽방에서 추는 춤이건만 잔뜩 신이 났다. 얼마 전부터는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됐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김 할머니의 고향은 경북 의성군 너럭바위 골이다. 대동아 전쟁 징용을 피하기 위해 결혼한 첫 남편은 6ㆍ25 전쟁으로 떠나 보냈고, 두 번째 만난 남편 마저 51살에 세상을 등져버려 혼자 몸으로 지금까지 지내왔다.
그리고 결혼한 딸을 따라 도미(渡美)했던 10년 세월. 할머니는 말도 안 통하는 땅, 미국 버지니아 주 어디라는 곳에서 손녀를 키우며 살아왔다.
할머니가 추는 블루스도 이때 배운 것이다. 말벗이라고 칭얼대는 두 손녀뿐이기에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을 달래고자 조금씩 배운 것이다. 할머니에게는 이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 어엿한 가정도 있고 평생 따라다니던 배고픔도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미국생활 10년 만에 김 할머니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람 냄새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구수한 고향 땅 냄새를 맡고 싶었고 진저리치도록 시큼한 김치를 먹고 싶었던 할머니는 끝내 딸 가족을 남겨 두고 한국행을 선택했다.
하지만 한국생활은 쉽지 않았다. 미국 생활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관심을 보였던 사람들이 하나 둘 고개를 돌리자, 김 할머니는 끝내 외톨이가 됐다. 여기에 미국 사는 딸에게서도 연락이 끊겼다. ‘가게가 잘 안 된다. 일 하러 가야 한다’는 전화가 딸의 마지막 전화였다. 그렇게 10년. 김 할머니는 전국을 떠돌며 이 집 저 집 닥치는 대로 일감을 받아 생계를 이어왔다.
작년부터 김 할머니는 진관외동 경로당 방 한 켠에 세 들어 산다. 나이가 많아 더 이상 일자리도 없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가족이 없는 노인에게 주는 생활비인 30만원으로 한 달을 버틴다. 방세 12만원을 내고 나면 18만원이 남는다. 따라서 할머니의 하루 생활비는 오천원이 조금 넘는다. 인근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주는 무료급식으로 점심 한끼를 해결하고, 나머지는 어떻게 먹는지 모르게 때운다.
그래도 굶지는 않고 산다고 김 할머니는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할머니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평생을 앓아왔던 당뇨병이 악화돼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나이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은 간신히 환한 것과 어두운 것만 구분할 뿐이다. 김 할머니는 어두운 게 제일 싫다. 눈이 정말 안 보이게 된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할머니는 쪽방 안이 환하게 밤낮 불을 켜 둔다.
쪽방 문틈으로 할머니의 18번이 흘러나온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누나…봄날은 간다, 봄날은 정말 자알 가안다….” 할머니의 노래가 조금씩 작아진다.
후원계좌)주택은행 김복녀 461925-96-109483. 전화번호)02-359-0932
부디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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