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한 주택 건설, 저희들에게 맡겨 주십시오. 최첨단 주택 문화를 열어 드립니다." 남양주시 도농동 산동네 마을 밑. 주택 재개발 공사로 포크레인 소리가 여간 시끄럽지 않다.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 길을 30여분 걸어 오르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낡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연화네 식구가 사는 달동네이다. 연화네 가족은 2년째 여기서 지하단칸 셋방을 얻어 산다. 가족은 할머니 김금산(78), 아버지 김순철(48), 어머니 진정분(47) 그리고 연화(15).
연화의 아버지는 어릴 때 귓병을 앓아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인이다. 엄마도 어릴 때 앓은 결핵성 관절염 때문에 허리가 휘어지고 무릎 연골이 없는 신체 장애자다. 목발이 없으면 한 발짝 떼기도 어렵다. 할머니는 강원도 두메 산골에서 평생 화전민 생활을 했다. 살기가 어려워, 한 때 재가를 하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새 남편마저 얼마 안 돼 사망하자, 평생 과부로 늙었다.
연화 아버지의 학력은 중학교 중퇴. 간신히 자기 이름이나 적을 정도다. 4살 때 앓은 중이염 때문이다. 남편도 없는데다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인 연화 할머니는 아들의 병을 고칠 능력이 없었다. 병이 있는 줄도 몰랐다. 10년 넘게 앓아온 중이염은 만성 중이염으로 악화되고, 중학교 때는 피고름이 귓구멍에서 줄줄 흘러 나왔다. 끝내 모든 청력을 잃어버렸다.
이 때문에 연화 아빠는 직장을 구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나마 구한 일거리도 한 두 달만에 쫓겨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연화 아빠는 남의 집에서 쓸모 없어 버린 물건을 주어다 파는 고물상이 됐다. 20년 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이러니 연화 엄마가 아무리 발을 동동 구르며 집안을 꾸려가도 돈이 모일 리 없다.
연화는 경춘선 철길 밑 쓰러져 가는 단칸 한옥에서 태어났다. 연화 엄마가 결혼할 때 가져 온 200만원으로 마련한 전셋집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열차가 지나가고 그 때마다 깜짝 놀란 연화가 자지러지게 울곤 했다. 밤이면 쥐들 때문에 연화네 세 식구는 편히 잠을 잔 적이 드물다.
목발을 짚고 다니지만 연화 엄마는 참 부지런하고 알뜰한 사람이다. 남이 버린 전자제품, 옷가지는 그냥 놔두지 않는다. 모아서 닦고 고쳐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한다. 장마철이면 곰팡이 슬기 쉬운 지하 단칸방에 살건만 계단마다 꽃을 심어 놓는다. 남편이 만원. 이만원 벌어오면 조금씩이라도 저축한다. 그래서 결혼 16년만인 2000년. 이곳 달동네로 이사왔다. 네 식구가 지내기에는 너무 비좁은 집이지만 할머니와 함께 살 수 있어서 행복했다. 처음으로 온 가족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2년. 연화 가족은 새로 마련한 둥지마저 빼앗길 위기에 있다. 달동네가 재개발되기 때문이다. 연화네는 20여 년 살아온 남양주시를 떠나 시골로 가야 한다. 지금 돈으로는 전셋집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화는 모처럼 사귄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 연화 아빠도 무얼 해야 하나 막막하다.
연화네 단칸방 벽에 연화가 초등학교 때 받아온 표창장이 걸려 있다. 독서를 잘 한다고 받은 거라 한다. 동화책 읽기를 좋아하는 연화, 연화의 가족은 올 겨울 어디서 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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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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